盧·鄭 "여론조사는 내 방식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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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후보 단일화 협상이 냉온탕을 넘나들고 있다. 하루에도 몇번씩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는 모습이다.

10일 밤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 단일화도 수용할 수 있다고 양보하면서 치고나가자 협상은 급진전되는 듯했다.

그러나 당초 여론조사를 주장하던 통합21 정몽준 후보 측이 11일 새로운 카드를 내놓았다.

양당이 동수(同數)의 대의원을 뽑아 명부를 만들어 이들 가운데 일부를 상대로 여론조사를 하자는 주장이다. 그 사이에 판단 자료를 주기 위해 몇 차례 후보간 TV토론을 하자는 것이다.

盧후보측 김경재(金景梓)홍보본부장은 "민주당 내분을 이용해 경선불복 세력까지 모아 여론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성실한 자세가 아니다"고 받아쳤다.

양측이 장군멍군을 부르는 식으로 제의와 역제의를 하며 공방을 벌이는 것은 명분과 실리 모두를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盧후보의 여론조사 수용의사 표명은 鄭후보의 퇴로를 차단하고, 협상이 결렬됐을 때의 책임이 鄭후보에게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포석으로 받아들여졌다.

盧후보는 자신의 지지도가 반등하면서 鄭후보와의 격차가 근소하게 좁혀지는 국면인 만큼 배수진을 치고 나오면 상승세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단일화 협상과정 하나하나를 鄭후보와의 승부로 여기는 盧후보의 인식도 작용했다.

결국 盧후보는 단일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임으로써 협상 주도권을 쥐고, 단일화 불발 때에도 鄭후보에게로 분산된 민주당 지지표를 다시 자신에게 쏠리게 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 같다.

이에 대해 鄭후보는 민주당의 국민경선 당시 대의원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를 요구하면서 반격을 했다. 국민경선 대의원 가운데는 이른바 '반노·비노'성향의 대의원이 다수 포함돼 있어 盧후보의 입장에선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의 대의원은 1만5천명이나 되고, 통합21은 5천5명밖에 안되는데, 동수로 할 경우 통합21은 鄭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만 나올테지만 민주당은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측간 불신의 골이 있어 재개되는 단일화 협상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두 후보 모두 자신이 양보하는 상황은 전혀 생각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협상의 실질적 타결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盧후보 측 정순균(鄭順均) 언론특보는 "鄭후보가 국민의사가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는데, 대의원만으로 국민의사를 어떻게 반영하느냐"고 반문했다. 이날부터 재협상에 돌입한 양측 협상 대표들이 서로 준비한 협상 원안(原案)에 얼마나 수정을 가할 수 있느냐도 변수다.

盧후보 측은 鄭후보 측의 제안을 일단 협상용으로 여기고 있고, 鄭후보 측도 "절충의 여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두고보자"고 말해 여지는 남겨두고 있다.

강민석·김성탁 기자

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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