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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에 국악앨범 낸 김수철]기타 산조 개척한 '젊은 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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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자유로움과 즉흥성을 추구하는 산조(散調)는 국악곡의 백미(白眉)로 '기악곡의 소우주'로도 불린다. 가야금·거문고·대금·해금·피리·아쟁·태평소 등 거의 모든 독주 악기의 명인들이 이 음악을 자랑삼아 선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산조란 흩어진 가락을 장단의 추이에 따라 모아놓은 일종의 모음곡으로 보면 된다. 그렇다면 피아노·기타·클라리넷 등이라고 산조가 불가능한 법은 없을 듯하다. 우리 가락의 시김새를 악기의 특성에 잘 맞게 가다듬으면 그만 아닌가.

기타 하나 들고 무대에서 팔짝팔짝 뛰면서 '젊은 그대''나도야 간다'를 부르던 '작은 거인'김수철(45)씨가 지난 16년간 갈고 닦아온 기타 산조를 음반으로 정리했다. '기타 산조'라는 타이틀의 새음반을 들고 찾아온 그는 데뷔한 지 20년이 넘은 중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직도 장난기 섞인 소년의 표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이면에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 '음악 장인'의 고집스러움도 엿보였다.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기타 산조를 계속 고치고 다듬을 겁니다. 기타와 장구를 위한 산조 말고도 대금·가야금과의 듀오로도 산조를 만들어 보니 더욱 흥이 나요. 이번엔 3∼4분짜리로 요약해 여러 곡을 담았지만 다음 음반에선 30분짜리 긴 산조도 녹음할 겁니다."

지난 7월 그가 12년 만에 가요앨범'팝스 앤 록'을 발표했을 때 가요팬들은 반가움을 금치 못했지만 음악계 일각에선 그가 1985년부터 국악인들과 함께 작업해온 음악세계를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월드컵 개막식 때 국악과 록의 만남을 시도한 데 이어 '기타 산조'를 낸 것을 보면 안심해도 될 듯하다.

"월드컵 응원 무대에서 '젊은 그대''나도야 간다'를 불렀습니다. 시청앞 광장을 가득 메운 월드컵의 열기를 서울역 광장을 메운 80년초 민주화 운동과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동안 팝의 물결에 밀린 록음악의 힘을 다시 체험했습니다."

국악음반으로는 '팔만대장경'(98년)이후 4년 만에 선보인 이 앨범에는 월드컵의 감동을 되새길 수 있는 개막식 음악'소통'도 수록돼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기타 산조'다. 김씨가'기타 산조'라는 이름의 음악을 처음 발표한 것은 86 아시안게임 전야제 때다. 무대에선 이듬해 중앙국악관현악단 정기 연주회에서 김덕수패 사물놀이와 함께 공연했다.

"80년쯤인가요. 친구들과 함께 작은 영화를 만든다고 몰려다니던 시절이었어요. 제목이'탈'이었는데 프랑스에서 열린 청년영화제 본선에도 진출했었죠. 음악을 맡고 보니 우리 소리를 먼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음악을 알아야겠다는 호기심도 있었지만 부끄러움이 앞섰습니다.그때부터 기타 산조가 시작된 겁니다."

86년 아시안게임 때 음악을 맡은 게 인연이 돼 굵직굵직한 국제적인 행사에서 음악을 맡아 직접 무대에 서왔다. 88 올림픽 전야제, 대전 엑스포 개막제,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2002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월드컵 개막공연에 이어 지난달 14일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열린 KBS 국악관현악단 공연에서도 기타 산조를 연주했다. 월드컵 개막식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정리한 작품이다.

얘기를 풀어놓던 김수철씨가 문득 가방에서 사진 한장을 내보이며 상기된 표정을 짓는다. 얼마전 KBS 국악관현악단과 함께 한 유엔 총회장 공연 사진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유엔대사들과 사무국 직원들 앞에서 기타 산조를 연주했다는 자랑스러움과 함께 당시 객석에서 터져나온 뜨거운 박수갈채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일종의 자신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에겐 월드컵 때 개막식 음악전문위원을 맡았던 것만큼이나 뿌듯한 일로 기록될 것 같다.

"산조의 멋을 외국인이나 청소년들에게 알리는 데 기타만큼 좋은 악기도 없어요. '김수철류 기타 산조'라고 이름 붙여도 될까요. 장구나 가야금 같은 다른 악기가 기타를 받쳐주기도 하고 함께 움직이기도 하죠. 두 악기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대목도 있습니다."

김씨는 기타 산조로 음악팬들을 만나기 위해 조만간 록밴드를 결성할 계획이다. 그동안 작곡만 해오다 보니 '가수 김수철''기타리스트 김수철'이라는 말을 듣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내년 봄쯤이면 라이브 공연과 함께 전국 순회공연 소식도 들려올 것 같다.

"음반이 팔리면 몇 장이나 팔리겠습니까. 제 음악을 다시 듣고 싶은 분들에 대한 일종의 배려인 셈이죠. 산조의 정신이 즉흥성과 자유로움에 있는 만큼 실제 무대에서 더 많은 것을 보여드려야죠."

그의 천진난만한 미소 뒤편에 고독한 그림자가 짙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두 명 이상의 연주자가 만나는 일회적인 크로스 오버가 아니라 한 명의 연주자가 자신의 음악세계에 녹여내는 '록과 국악의 만남'이니 외로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무대에서 팬들과 만나고 싶은 것도 이러한 고독을 떨쳐버리기 위한 몸부림은 아닐까. 김씨는 당분간 작곡 활동을 접어두고 방송과 공연 등 가까운 거리에서 팬들과 만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록의 부활''기타 산조의 집대성'이라는 화두를 붙들면서.

글=이장직, 사진=박종근 기자

lull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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