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로 빠져드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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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번엔 죽거나 투옥되거나 고문당한 사람이 없었다. 중국 공산당은 8일 개막된 16기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16大)를 통해 평화적으로 새 지도자를 선택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후진타오(胡錦濤)부주석이 당내 최고권력자인 당 총서기직에 지명될 것이다.

중국문제 전문가인 미국 컬럼비아대 앤드루 네이선 교수는 이를 두고 중국이 정치를 '제도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옳다. 공산당은 지금 '부드럽게' 권력을 이양하는 방법을 실습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중국은 '민주화'도 이뤄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16대(大)에서 이뤄지고 있는 권력이양은 사실 가장 비민주적이다. 1989년 천안문 사태를 무력진압한 뒤 당시 최고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장쩌민(江澤民)을 후계자로 정했고, 곧이어 후야오방(胡耀邦)을 江의 후계자로 내정했다. 지금의 중국 정치체제는 鄧시대처럼 여전히 폐쇄적이다. 중국 자체는 현대적으로 보이지만 정작 중국 정부는 그렇지 않다. 결과적으로 권력 이양도 겉으로는 평화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49년 중국 공산정권 수립 후 두 차례의 권력이양이 있었다. 마오쩌둥(毛澤東)에서 鄧으로, 鄧에서 江으로. 그러나 당초 계획대로 권력이양이 이뤄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毛가 선택한 후계자 화궈펑(華國鋒)은 집권 2년 만에 鄧에게 쫓겨났고, 鄧이 선택한 후계자 후야오방과 자오쯔양(趙紫陽)은 결국 폐기처분됐다.

최후의 승자가 된 江은 마지막까지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鄧처럼 공직 사퇴 이후에도 실질적인 최고지도자로 남길 원한다. 江이 당내 최고권력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자신의 심복들을 대거 진출시키려고 애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만일 江이 16대 이후에도 여전히 당내 주도권을 장악한다면(이럴 가능성은 아주 커 보인다) 이는 앞으로 胡에게 적지 않은 고통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江은 최측근인 쩡칭훙(曾慶紅)이 胡를 밀어내고 당 총서기직을 차지할 수 있도록 막후에서 힘을 쓸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어떤 인물이 최고지도자가 되든 새 지도층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앞으로도 몇년이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중국의 행정은 '정치의 볼모'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중국은 문제덩어리다. 중국의 높은 경제성장률도 막대한 재정적자 정책이 낳은 결과물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대가도 톡톡히 치러야 한다. 게다가 중국의 금융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수준이다. 이 때문에 중국 전역에서는 매일 수백건의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관리 부패는 중국 최고지도부를 집어삼킬만큼 심각하다. 이처럼 도전이 극성일 때 권력은 가장 약세에 놓인다. 그런데도 공산당은 이런 도전에 맞설 생각은 않고, 자기들끼리 권력다툼이나 벌이고 있다.

정체된 개혁과정에 다시 불을 댕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치체제를 실질적으로 개혁하는 길뿐이다. 당내 신진세력들은 이제 변화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현재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마을 단위의 직접선거는 그 소중한 싹이다.

그렇다. 분명 변화는 시작됐다. 그러나 속도는 너무 느리다. 개혁이 공산당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지 못한다면 과연 의미있는 개혁일 수 있을까? 젊은 당원들은 정치적 변화를 얘기할진 모르지만 지도자들은 겉치레에만 급급하다.

정권 이양은 분명 부드럽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부드러움이 전부는 아니다. 중국 인민들 스스로가 자신의 지도자를 선택하는 시스템, 이것이 진짜 목표가 돼야 한다.

정리=진세근 기자 skjin@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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