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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의 큰 꿈, 한국의 개 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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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라 안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사생결단의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나라 밖에서는 세계화로 인한 지구적 차원의 지각변동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지난 1년간 세계가 겪어 온 지각변동의 중심은 동아시아에 있었고 그 진앙지(震央地)는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의 웅비(雄飛)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며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국제질서가 재정립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 4∼5일 이틀간 캄보디아의 프놈펜에서 개최된 동남아연합 즉 아세안 10개국간의 정상회의를 계기로 그 윤곽을 드러냈다. 아세안 정상회의의 직전과 직후에는 한국·일본·중국의 동북아 3국 정상회의, 아세안과 동북아 3국간 이른바 아세안+3 정상회의 및 아세안과 한·중·일 각국간 이른바 아세안+1 정상회의가 열린다. 올해 프놈펜에서는 '아세안·중국경제협력기본협정'이 체결되었다. 그 골자는 2010년까지 아세안·중국간 자유무역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1년 전 주룽지(朱鎔基)총리가 제의했던 구상이 공식화한 것이다. 또 '아세안·일본긴밀경제연대'를 위한 일본과 아세안 정상 공동선언문이 서명됐다. 2012년까지 아세안·일본간 자유무역을 실현토록 추진하자는 취지다. 아세안·인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자는 인도 측의 제안을 배경으로 아세안과 인도간 최초의 정상회의가 개최되기도 했다.

또 이들 정상회의 1주일 전에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른바 '아세안엔터프라이즈정책'을 발표했다. 아세안 및 그 개별 회원국들과 FTA를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아세안 주변의 모든 경제대국이 아세안과 FTA를 맺겠다고 일제히 나서는 것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실로 동아시아지역에서 주도권을 차지하겠다는 이들 대국 간의 경쟁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중국과 아세안의 18억 인구로 구성되는 자유무역권을 구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위안화(元貨)경제권을 발전시킴으로써 동아시아경제를 주도하고 또 이를 배경으로 미국 및 유럽연합(EU)과 천하삼분(天下三分)의 형세를 벌이자는 것이다. 일본은 이에 대응해 엔화경제권을 구축해 중국의 독주를 저지하고자 한다. 미국은 또 그 나름으로 아세안국들과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어 중국 혹은 일본의 동아시아 독주를 막고 나아가 태평양연안지역의 주도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인도 역시 중국의 아세안시장 독차지를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지경학적 야심이 펼쳐져 나감에 따라 중국·일본·미국·인도 등 사이에는 동아시아를 무대로 각축전이 전개될 것이다. 그로 인해 무역과 투자가 다각적으로 확대되고 경제통합이 전개돼 지역 전체의 경제성장은 가속될 것이다. 문제는 그 열매를 어떻게 나눠 향유할 것인가인데 여기에 각축전의 의미가 있다.

놀라운 것은 아세안이 이들 대국의 FTA 제의를 적극 수용하고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아세안 나름의 큰 꿈이 있다. 자기를 중심축으로 하고 중국·일본·미국·인도 등 각 경제대국을 지축(支軸)으로 하는 별모양의 자유무역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 꿈이 실현되는 경우 아세안은 자기와 모든 지축국(spoke)으로 구성되는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 중심축(hub)을 구성하는 자기네 국내시장으로 국제투자와 세계적 기업을 유치하게 될 것이다. 또 국제무대에서 지축국들의 옹위를 받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할 것이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상호 자유무역을 추진하고 또 지축국들과 자유무역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내적으로 엄청난 구조조정의 고통과 이로 인한 사회적·정치적 갈등을 겪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유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세계화로 인해 새롭게 전개되는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자기들이 힘없는 변방국으로 전락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멕시코는 32개국과, 칠레는 10개국과 별모양의 자유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았다. 싱가포르는 연말까지 9개국과 FTA를 갖추게 될 것이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다시 그려지는 세계 경제지도에서 한국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프놈펜에서 한국은 아세안 측의 FTA 체결 제안을 받고 국내농업의 어려움을 이유로 정중하게 거절했다. 한국의 동북아 허브화 꿈은 남가일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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