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밥장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일본에서 가장 예약하기 어려운 음식점, 1년쯤 기다려야 자리가 나는 레스토랑…. 개업 8년째를 맞는 도쿄(東京) 긴자(銀座)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 베토라'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예약제인 저녁과 달리 선착순인 점심에는 오전 8, 9시부터 장사진이다. 기다리다 지친 손님들을 상대로 부근에 카페와 음식점이 새로 생겨났다. 이탈리아까지 소문이 퍼져 현지 요리평론가가 직접 찾아온 적도 있다. 맛을 보고는 "이탈리아에서 개업해도 성공하겠다"고 극찬했다.

광고는 전혀 하지 않는다. 인테리어도 어설프다. 가격으로 경쟁하는 것도 아니다. 비결은 오직 하나, 맛이다.

그 맛의 주인은 오치아이 쓰토무(落合務). 그가 만드는 것은 이탈리아 요리지만 그가 지닌 마음가짐은 일본 장인의 혼이다. 그는 손님들을 재판관이라고 생각한다. 맛있게 먹고 흔쾌히 값을 치르는 손님들을 보면 그는 '오치아이, 무죄!'라는 소리가 귓전에 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요리할 때 늘 유죄와 무죄의 갈림길에 선 피고처럼 팽팽하게 긴장한다는 것이다.

요리는 재능만으로 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스페인의 천재 요리사 페랑 아드리아는 절차탁마의 표본이다. 모차르트.피카소.달리가 한데 합쳐 요리사로 다시 태어났다는 평을 받으면서도 평소의 노력이 대단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엘불리'(바르셀로나)의 셰프인 그는 매년 6개월은 가게 문을 닫고 실험실에 틀어박힌다. 다음 시즌의 요리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기업으로 치면 엄청난 연구개발(R&D) 투자다. 그러곤 이를 책과 CD롬으로 만들어 당당히 공개한다. 나는 늘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따라할 테면 따라해 보라는 투다.

이들은 유명해서 성공한 게 아니다. 성공했기 때문에 유명해졌다. 그때까진 어려움도 많았다. 국내에서도 성공한 밥장사들은 고생했던 얘기를 먼저 들려주곤 한다.

그런데도 밥장사를 만만하게 보는 사람이 많다. 45세 정년이라는 '사오정' 탓인지 중년 직장인 치고 "밥장사나 할까"라는 말 한번 안 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혼신의 노력과 손님에게 심판받겠다는 각오 없이는 어렵다. 이를 다 갖췄다면 차라리 지금의 일자리에서 분발해 성공하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