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문책 이후 생각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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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헌법상 인신의 자유와 불법한 공권력으로부터 인권을 수호하는 역사는 장구하다. 그 역사 중에 '미란다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누구나 자기 범죄에 대해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수사기관은 수사 전에 이런 진술거부권이 있음을 미리 알려줘야 한다. 이런 것을 알려주지 않은 진술은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원칙이 지켜지면 강요된 자백에 의한 증거는 당연히 효력을 갖지 못하고, 자백을 얻기 위한 고문은 더더욱 존재할 수 없게 된다. 1960년대 미국에서 형사사법의 이정표를 세운 연방최고법원의 판결에서 선언된 것이다.

이 판결만 보면 미란다라는 이름은 일약 인권 수호의 영웅이다. 그런데 실제 범인 미란다는 극악무도하고 정말 인간쓰레기 같은 존재였다. 그는 가정파탄된 부모 밑에서 14세 때부터 자동차 절도 등으로 감호처분을 받기 시작해 강도·절도·협박·강간 등 정말 더러운 범죄를 저질러 평생 교도소를 드나들며 중죄인으로 살았다. 이 판결의 당해 사건에서도 늘 해온 수법대로 연인과 헤어지는 여인을 납치해 사막으로 끌고 가 밧줄로 묶고 강간했다는 혐의사건이었다. 이 사건에서도 미란다를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최고법원은 수사상 불법 취득한 증거를 모두 무효로 처리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인이라 하더라도 수사절차상의 인권은 침해될 수 없다는 헌법의 원칙을 현실에서 재확인하고 못박은 것이다.

검찰 수사 중 피의자가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퇴진하고 검찰이 요동을 치고 있다. 조폭을 뿌리뽑자고 한, 정의감에 불탄 젊은 검사가 사건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건은 인권사건이다. 이 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차제에 검찰에 대하여 총공세를 펼치는 것이다. 여기에 인권과 헌법을 동원하면 검찰의 어느 누구도 대꾸를 할 수 없다. 공격하는 사람은 인권수호자처럼 비칠 수 있어 손해볼 것 없다. 그러나 헌법학을 하는 한 사람으로 며칠동안의 상황은 정말 고민스러웠다. 검찰 수사상 치사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어떤 경우에도 변명할 수 없는 것이고, 이를 계기로 검찰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미란다 사건'도 대한민국 검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관계자 문책과 검찰의 반성 촉구라면 누구나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이 문제 밖에 없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먼저 이 사건으로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이 사퇴를 하는 것이 옳을까. 사퇴하는 심정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한 나라의 주요 장관이나 검찰총수가 이렇게 쉽게 교체된다면 무엇 때문에 장관과 총장 인선을 놓고 인사가 중요하다고 하는가. 장관 평균 수명이 10여개월에 지나지 않는 이 정부에서는 어차피 장관이 별 것 아닌지 모르겠으나 제대로 된 나라라면 장관이나 검찰총수의 진퇴는 보다 신중해야 한다. 특히 이 사건 초기부터 정치권에서 각자 정치적 계산에 따라 장관이나 총장의 퇴진을 부르짖고 언론도 이런 상황을 냉정하게 견제하지 못한 모습을 보면 정말 우리는 나라 일을 무당 푸닥거리 정도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검찰의 중견 검사나 고위 인물 하나를 제대로 만들어 내는데 드는 비용과 노력을 생각해보면 도대체 이 사건과 관련해 조직상 지휘 체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진정으로 국가를 위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정서법'(?)을 빙자해 검찰 인기를 유지하기 위한 포퓰리즘인지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이를 검찰 내부의 권력투쟁의 빌미로 삼는다면 이는 정말 사악한 짓이다.

이 정권에서도 검찰은 정치적으로 이용돼 현재 검찰 내부의 갈등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이런 때에 우리는 사건의 본질을 직시하고 냉정을 찾아 사망사건은 그에 따라 처리하되 검찰의 기능과 조직이 와해되거나 정치적 의도로 왜곡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검찰이 무너지면 국민이 불행해지고 국가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새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인선도 이런 관점에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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