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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SK : '뛰는 경영' 밑그림 글로벌에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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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팍스넷 인수, KT 민영화 지분 인수, 한전 발전 자회사 인수 추진, 가스공사 민영화 참여, 신용카드 사업 추진, 세계물산 인수…'. SK 그룹은 요즘 이처럼 사업 보폭을 크게 넓히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대우·현대그룹이 어려움을 겪던 와중 SK는 탄탄한 구조조정에 이은 확장경영으로 재계 서열 3위로 성큼 올라섰다. SK의 이 같은 발빠른 '공격 경영'의 뒤에는 손길승·최태원 두 회장의 비전에 따라 큰 그림을 그리고, 병참도 지원하는 그룹 구조조정추진본부(구조본)가 있다. 4개 팀 40여명의 소규모 인원으로 구성된 SK 구조본은 외환위기 이후 그룹 살림을 다져온 데 이어 지금은 그룹의 제2의 변신을 추진 중인 '핵심 두뇌' 역할을 맡고 있다.

◇기능과 조직은=현재 SK에서 구조조정의 의미는 명백하게 미래지향적이다. 구조본 관계자는 "1996년 이후 부실 사업에 대해 과거지향적인 구조조정을 끝내 순익은 10배, 부채 비율은 절반 아래로 낮아졌다"며 "이제는 불확실성이 높은 글로벌 경영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미래지향적인 구조조정이 발등에 불"이라고 말했다.

구조본의 업무는 크게 그룹의 사업 전략 설정과 내부 경영구조 개혁이라는 양대 축으로 이뤄져 있다. 팍스넷·KT 지분 인수, 지난 7월 이뤄졌던 SK텔레콤의 계열사 보유 지분 해외 매각 등 넓은 의미의 사업구조조정이 업무의 중심인 셈이다. 구조본은 이러한 프로젝트가 생기면 관련 계열사와 팀을 만들어 함께 달라 붙어 마무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구조본은 또 계열사별 발전 전략인 '수펙스(SUPEX) 2000'과 이를 2∼3년 단위로 달성하기 위한 실행 프로그램인 'TO BE' 모델을 만들어 계열사별 진행 상황을 챙기고 있다. 지난달 25일 SK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제주에서 세미나를 열고 "2005년까지 설령 이익이 난다고 하더라도 기업 가치가 파괴되는 계열사는 정리시킨다"는 '생존 실험'을 발표한 것도 이 같은 구조본의 밑그림이 있어서였다. SK 계열사 관계자는 "계열사 일에 관여하는 다른 그룹 구조본과 달리 SK 구조본은 '전략'이 강한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SK 구조본은 사업구조조정 지원·재무구조 개선·인력팀 등 3개 팀이 중심이며 홍보실과 지난 7월 설립된 SK경영경제연구소를 거느리고 있다.

◇구조본 경영자들=2000년 12월부터 구조본부장을 맡은 김창근 사장은 지난 3월부터 그룹 지주회사 격인 SK㈜대표이사 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또 신설 SK경영경제연구소의 소장도 맡아 '1인 3역'을 수행 중이다.

김사장은 강한 체력으로 이런 막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마징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집에도 회사 근거리 통신망(LAN)을 깔아 놓고 결재와 전자우편 응답을 하는 등 하루에 서너 시간만 취침하면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김사장은 "일이 즐겁지 않으면 그렇게 못한다"며 "잠을 깊게 자는 방식이 훈련돼 있다"고 말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태권도부 생활을 한 공인 5단으로 지금도 헬스클럽에서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 입사 초기 선경합섬(현 SK케미칼)울산공장 노무과에 근무하던 중 직원들을 괴롭히던 지역 불량배들을 말리다가 허벅지를 칼로 찔리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직원들과도 격의없이 지내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 SK 구조본 관계자는 "구조본이나 SK㈜ 실무자들과 퇴근 후 식사를 하는 일이 잦다"면서 "여기서 그는 계급장을 떼고 이야기하자고 말한다"고 전했다. 직원들이 찾아와 얘기하면 큰형님처럼 들어줄 수 있다는 의미다.

김사장의 요즘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다.▶SK라는 거대한 조직을 작은 조직처럼 생동감 있고 활력 넘치게 만드는 것과 ▶훨씬 유능한 후임 경영자를 키우는 것이다. 이와 관련, 그는 "나보다 세 배 이상 우수한 후임자를 키워야 한다"며 "그래야 임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계발을 한다"고 자주 말한다.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38)SK글로벌 부사장과 최회장 친동생인 최재원(39)SK텔레콤 부사장도 SK구조본 경영자로 분류된다. 본부장이나 팀장은 아니지만 자문역으로 참여하고 있다.

최창원 부사장은 사업구조조정에, 최재원 부사장은 정보통신 관련 업무에서 구조본의 보고를 받고 자기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구조본 관계자는 "전문 경영인과 대주주 간 파트너십 경영의 사례"라고 설명한다.

최부사장은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시간대 MBA코스를 밟던 중 귀국해 1994년 구조본 전신인 그룹 경영기획실 과장으로 입사했다. 사업구조조정에 관심이 많고, 전문성도 상당하다는 평이다. 96년 당시 선경 인더스트리 기획관리실장 때 국내 최초로 명예퇴직제를 도입하며 인력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경력이 있다. 지난 8월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 18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재원 부사장은 미 스탠퍼드대 재료공학 석사와 하버드대 MBA를 마치고 94년 SKC 부장으로 입사했으며, 99년부터 SK텔레콤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룹 홍보실장인 이노종 전무는 74년 선경합섬 홍보실에 입사해 줄곧 한우물을 판 홍보 전문가로 SK그룹 성장에 보이지 않는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98년 손길승 당시 경영기획실장의 주도로 이뤄진 '선경에서 SK'로의 그룹 CI 변경을 뒷받침해 그룹 이미지 변신에 크게 기여했다.

사업구조조정 지원팀은 현재 구조본에서 가장 바쁜 조직. 지난달 25일 제주 CEO 세미나에서 발표된 '2005년까지 생존조건 확보'의 후속 작업을 챙기고 있다.

팀장인 이창규 상무는 관련 계열사나 부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팀의 이용석(41)상무는 SK경영경제연구소의 경영연구실장으로 사내 컨설팅 작업을 통한 미래 경영환경 예측을 맡고 있다.

인력팀장인 정철길 상무는 업무처리가 야무지고 성실한 자세로 정평이 나 있다. 미 조지아대 MBA 출신. 최근 중국 SK 본사를 담당할 책임자로 인텔 차이나 출신인 씨에청 대표를 뽑고 중국 현지인의 한국 본사 교차근무 제도를 만들었다.

외환위기 이후 계열사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재무팀은 지난 8월 SK㈜와 SK글로벌이 보유한 SK텔레콤 지분의 해외매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 매각 협상의 틀을 만든 조기행 팀장은 현재 미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에서 단기 연수 중이라 SK C&C 출신의 조영호 상무가 팀장을 대행하고 있다.

이영렬 기자 young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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