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결재하는 CE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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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서울 계동 현대모비스 박정인(60) 회장 집무실엔 커다란 책상 위에 대형 모니터 한대만 있다. 소파나 의자는 보이지 않는다.

'스피드 경영'을 주창하는 朴회장이 서서 결재를 하기 때문이다.

"초(超)스피드 시대가 아닙니까. 자동차 산업은 한달이 다르게 신기술이 나옵니다.CEO가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결재할 만큼 여유가 없어요."

그는 오전 7시 출근과 동시에 컴퓨터에 들어온 e-메일 서류부터 서서 확인한다. 이어 사인이 들어 있는 '전자결재란'을 클릭한 뒤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결재가 이뤄진다. 이 서류는 "결재가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기안자에게 곧바로 전달된다.

"최초 기안에서 최종적으로 내가 전자결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반나절을 넘지 않습니다. 국내 기업 중 가장 빠를 것입니다." 이 때문에 임원들이 문앞에서 결재를 기다리는 모습은 볼 수 없다. 결재를 마치면 곧바로 화상회의를 시작한다. 16명의 임원이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고 朴회장과 잠시 인사를 나눈 후 바로 회의에 들어간다. 컴퓨터에는 그날 발표자가 자료를 첨부파일로 보내고 컴퓨터펜을 이용해 프리젠테이션을 한다.

그는 "화상회의는 설치비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활용도가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톱(회장)부터 화상회의를 주재하고 전자결재를 하는데도 일부 임원들이 서류를 들고 결재받으러 오더군요. 호통을 쳐 돌려 보냈더니 부·팀장까지 석달 만에 전파됐습니다."

화상회의로 임원들을 질책할 때도 있다."직접 대면할 때보다 덜 흥분하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회의가 진행된다"고 말한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한 화상회의는 이제 회의자료만 3백여가지에 이른다. 지난해 말 종무식도 사이버 상에서 치렀다. 예전 강당에 서울 지역 임직원들이 모였던 것을 대신해 지방과 해외 사업장 70여곳을 화상회의로 연결했다. 올해 신년식도 마찬가지다.

"현재 부서장·팀장 등 4백명 정도가 울산·용인 연구소와 본사를 연결해 수시로 화상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1백50여 납품회사와도 화상회의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이같은 인터넷 활용 때문에 朴회장은 지난달 한국능률협회가 주는 '인터넷 경영대상'도 받았다. 이달 13일에는 정보통신부가 선정한 '2002년 정보화 기업 부문 뉴미디어 대상'도 수상한다.

김태진 기자

tj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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