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느낌이 있는 경영… '신바람 주식회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6면

토털잡화업체인 ㈜쌈지의 이윤아 홍보팀장은 근무중 일이 잘 안될 때면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본사에서 신촌 홍대앞까지 원정(?)간다. 회사가 지어놓은 공연·전시장인 '쌈지스페이스'에 가기 위해서다.그는 이곳에서 공연도 보고, 그림도 관람한다. 근무시간 중에 이래도 되는 것일까.

이 팀장은 "공연을 보면 가령 어떤 컨셉트로 홍보를 해야 고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영감이 떠오른다"고 답한다. 이처럼 쌈지의 임직원들은 회사일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이구동성이다. 구두 디자이너인 이겸비씨는 "아디이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공연장이나 갤러리를 찾으면 많은 도움을 받는다"며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가 너무 좋아 직장을 옮기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7층짜리 건물인 쌈지스페이스엔 공연장과 갤러리가 있다. 10여명의 미술작가가 1년간 상주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전시회도 연다. 일반인도 관람이 가능하지만 주 고객은 7백여명에 이르는 이 회사 직원들이다. 직원들에겐 무료다.

<관계기사 e18면>

이 회사 천호균 사장의 경영철학도 독특하다."그저 직원들이 자유롭고 재미있게 근무하라는 취지에서 만들었다"고 답한다. 물론 속내(?)는 있다. 천 사장은 "예술적이고 자유로운 직장 분위기에선 제품에 예술이 묻어나오고, 자연스레 고품질 제품이 된다"고 털어놓는다.직원들이 대 환영이다. 이직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최근 2∼3년 내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길을 떠났던 10여명의 직원이 귀국 후 다시 쌈지에서 근무할 정도다.

'재미있게 일하자'는 펀(fun)경영 바람이 국내업체에 불고 있다.스타벅스와 시스코·사우스웨스트항공 등 세계의 유수한 기업들이 최근 앞다퉈 펀 문화(fun culture)를 조성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철학은 간단하다.기업의 임직원들은 모두 사람이란 것이다. 이들을 재미있게 만들고, 흥미를 유발시키면 생산성도 절로 높아질 것이라는 취지다. '돈'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지만, 사람은 돈만으로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철학도 숨어 있다.

'펀'방법도 다양하다. 쌈지처럼 예술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곳도 있지만, 깜짝 파티나 우아한 사무실 등으로 신나는 직장을 만드는 곳도 있다. 물론 기본은 '사무실=가정'이다. 가정처럼 따뜻하고 재미있는 일터를 만들어야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에서다.

LG전자는 지난 하반기부터 '신규 입사자 특별 보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신입사원이건 경력사원이건 처음 LG전자에 입사할 때 어색함과 불편함을 한시라도 빨리 씻어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출근하기 하루 전에 같은 부서 직원들은 입사자들이 사용할 PC나 전화·사무용품 등을 준비한다. 자리엔 축하 풍선도 달아놓는다. 출근하면 구자홍 부회장이 축하 e-메일을 보낸다. 회사 ID카드나 의료보험카드·배지 등도 출근 첫날 오전 중에 몽땅 지급받는다.

하나은행 올림픽지점 이지은 지점장은 지난해 성탄절을 앞두고 11명의 직원 가족에게 편지와 함께 조그마한 선물을 보냈다. 편지에는 자신이 본 직원 개개인의 장점과 함께 회사에 없어선 안될 사람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이 지점장은 "직원들을 내 가족처럼 대하자는 뜻 외에 별다른 뜻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편지를 받은 직원 가족들이 모두 감사하다는 전화를 걸어왔고 답장까지 보낸 사람도 있었다. 직원들 역시 적극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예금 유치와 비자카드 고객유치 등 지점 간 경쟁이 붙을 때 올림픽 지점은 매번 전국 3백여개 지점 중 5위권 내에 들었다. 지난 9월부터 시작된 하나은행 국민관광상품권 판매는 한달 만에 목표의 1백50%를 초과달성할 정도였다.

인터넷솔루션업체인 이랭커는 올초 설날 특별보너스로 전직원들에게 20만∼30만원씩 하는 보약을 한재씩 선물했다. 하루 12시간씩 근무하는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돈보다 보약을 지어주는 게 가족냄새가 난다는 게 민재기 사장의 생각이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디자인 네트워크의 사무실은 예술이 느껴지는 가정집 분위기다. 사무실에서 하늘이 보이고, 바깥엔 조그만 고랑을 만들어 연을 심었다. 자료실은 가정의 서재처럼 만들었고, 마케팅부서 사무실은 고급 독서실처럼 개인 부스마다 스탠드가 부착돼 있다. 이병주 사장은 "디자인은 감각"이라며 "감각을 키우려면 사무실 환경도 이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무기기제조업체인 신도리코의 충남 아산공장 중앙로비에는 인공폭포가 있고, 갤러리와 공연장·헬스장까지 갖춰져 있다. 5만평 공장부지 중 70%가 사원복지 공간이다. 이 회사 김성웅 홍보실장은 "신바람나는 직장이 돼야 한다"면서 "우리가 사원복지에 신경쓰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LG경제연구원 이승일 연구원은 "외환위기 이후 직장 분위기가 삭막해진 곳이 많다"면서 "이젠 재미라는 관점에서 경영을 바라보고,신바람나는 직장 분위기를 만들 때"라고 지적했다.

글=최형규, 사진=박종근 기자

chkc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