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출신 번디트 운그랑시, 서울시향과 첫 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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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디트 운그랑시!"

2002년 9월 28일 뉴욕 카네기홀. 로린 마젤(74.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이 지휘봉 대신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올라 동양에서 온 한 젊은 지휘자의 이름을 불렀다. 마젤이 '음악계의 큰 손'으로 알려진 백만장자 알베르토 빌라(64)와 함께 창설한 제1회'마젤-빌라 국제 지휘 콩쿠르'의 우승자를 발표하는 순간이었다.

중국 베이징(北京) 출신의 여성 지휘자 시안 장(30)과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한 태국 출신의 신예 번디트 운그랑시(33.사진)는 이날 최종 결선에서 뉴욕의 명문 교향악단인 세인트 루크 오케스트라를 지휘,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 서곡', R 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을 연주했다. 심사위원석에는 로린 마젤을 비롯,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뉴욕필 악장 글렌 딕테로,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음악감독 마르첼로 비오티, 도쿄 필하모닉 종신 지휘자 오마치 요이치로, 작곡가 겸 지휘자 크시초프 펜데레츠키 등이 앉아 있었다.

43개국 출신의 350명이 35세 이하의 신예들이 참가한 이 콩쿠르에서 우승, 4만5000달러(약 5000만원)의 상금을 받은 운그랑시가 서울시향의 새해 첫 정기 연주회에서 지휘봉을 잡기 위해 14일 서울에 왔다. 뉴욕필의 부지휘자로 활약하면서 2003년 로린 마젤이 서울시향 무대에 설 때 연습 지휘를 맡긴 했지만 정식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리허설을 함께 한 서울시향 악장 신상준씨는 그를 가리켜 "명확한 지휘 테크닉과 따뜻한 인간미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운그랑시는 태국 방콕에서 태어나 기타를 배우면서 클래식에 입문했다.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1989년 11세때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필의 방콕 공연을 보고나서다. 방콕 울롱공 대학에서 지휘와 작곡을 공부한 뒤 20세때 미국으로 유학, 지휘 전공으로 미시간대 석사과정을 밟았다. 현재 찰스턴 심포니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 중. 오레건 심포니 부지휘자 시절 만난 음악감독 제임스 데프리스트가 그의 장인이다. 유럽 무대 진출을 위해 독일 뮌헨에서 살고 있다. 그의 홈페이지(bunditmusic.com)에 비디오 클립으로 올려 놓은 베르디의'운명의 힘 서곡'지휘 장면에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번뜩이는 눈빛이 인상적이다.

"존경하는 지휘자는 로린 마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사이먼 래틀, 제게 많은 영향을 준 분은 핀란드 헬싱키에서 4년간 배운 명교수 요르마 파눌라입니다. '연주를 방해하지 않고 도와주는 게 지휘'라고 배웠지요. 시벨리우스 교향곡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으면 지휘에 자신감을 느껴도 됩니다."

◆ 공연메모=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5일 대구 학생문화센터, 26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서울시향, 지휘 번디트 운그랑시, 피아노 데니스 마추예프, 쇼스타코비치'축전 서곡',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의 랩소디', 리스트 '죽음의 무도', 차이코프스키'교향곡 제5번'. 02-399-1742.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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