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SEC<美 증권거래위원회>위원장 해임 초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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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말 많고 탈 많은 하비 피트(57·사진)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중도하차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포스트·블룸버그통신 등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3일(현지시간) 피트의 사퇴가 임박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지난해 5월 발탁된 그가 불명예 퇴진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은 자업자득이다.

피트는 지난 7월 의회를 통과한 기업개혁법(사반스·옥슬리법)에 따라 SEC 산하에 회계감독위원회를 신설하고, 초대 위원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 SEC는 지난달 25일 초대 회계감독위원장에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지낸 윌리엄 웹스터(78)를 뽑았다. 웹스터는 1978년까지 연방법원 판사를 역임했으며 79년 FBI 국장을 거쳐 87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지낸 정보통.

그러자 비전문가가 선임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미 소비자연맹은 "업무와 관련 없는 인물이 선임돼 앞으로 기업회계제도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회복이 의문시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월가의 반응도 냉랭했다. 이 자리를 놓고 공화당과 치열하게 다퉜던 민주당에서도 가시돋친 말들이 동원됐다. 민주당은 "전문성을 떠난 정치책략이자 친기업적인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의 이해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피트 위원장에 대한 해임권고안을 부시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뒤를 이었다. 웹스터가 올해 나스닥에서 상장이 폐지된 US테크놀로지의 회계감사업무를 맡았었으며, 이 회사와 최고경영자는 지난해 말 횡령혐의로 투자자들로부터 수백만달러의 소송을 제기당한 상태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웹스터는 회계감독위원장직을 제의받곤 이런 고민을 피트에게 털어놨으나 피트가 이걸 네명의 다른 SEC 위원들에게 알리지 않고 깔아뭉갠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이런 사실이 SEC에 보고됐다면 그의 선임은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피트가 공화당 측 후보인 웹스터에게 중책을 맡기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얘기다. 이 문제가 불거지자 SEC는 내부 감사에 착수했다고 밝히면서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밀던 후보(교원연금기금의 존 빅스 회장)가 탈락해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하던 민주당이 총공세로 나왔다. 민주당은 웹스터와 피트가 동반 사퇴해야 하며, 웹스터의 선임과정에 대한 의회 청문회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의 거물까지 나섰다. 리처드 셀비 상원의원이 민주당 입장에 동조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는 SEC를 관할하는 상원 은행위원회의 공화당 간사로 내정된 인물이다. 공화당이 5일 치러지는 중간선거에서 상원의 다수당이 되면 은행위원장을 맡게 돼 있다.

셀비는 "피트가 회계감독위원장 후보의 신상정보를 위원들과 공유하지 않은 것은 큰 문제며, 증시 신뢰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이런 일이 터져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워싱턴 포스트는 부시 대통령이 곧 피트 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백악관은 이미 피트의 판단과 처신이 적절치 못했던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백악관은 그를 적극 두둔해 왔지만 사태가 이렇게 번진 이상 더 이상 감싸안기는 곤란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부시 대통령이 중간선거가 끝나면 그를 해임할 것 같다고 전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simsb@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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