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성까지 맞춘 '비빔밥 부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6면

good

밥 "대화가 잘 통해요."

켈리 "모든 일을 함께 나누죠."

강 "회식으로 늦어도 잘 이해해주죠."

박 "공통의 화제가 많아요"

bad

밥 "나쁘긴요. 좋기만 한데요."

켈리 "저도 그래요."

강 "나쁜 점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박 "집에서 너무 회사 얘기만 해요."

삼성전자 기흥공장 시스템 LSI 사업본부에 가보면 푸른 눈, 하얀 살결의 외국인 두 명이 눈에 띈다. 밥 라일과 켈리 라일 부부다. 외국인 부부 엔지니어라는 점에서 입사할 때부터 화제를 뿌렸다.

밥은 지난 5월부터 모바일 솔루션 프로젝트 부장, 켈리는 7월부터 품질 관리 과장을 맡고 있다.

라일 부부가 함께 삼성전자에 근무하게 된 계기는 무척 재미있다. 밥은 지난 4월 삼성과 채용 인터뷰를 했다. 해외 우수인력 채용에서 삼성의 조건은 '삼성 경험이 전혀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외국인'이었다. 인터뷰 도중 밥은 지나가는 말로 "아내는 나보다 훌륭한 엔지니어로 삼성에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담당자는 "당신 아내를 스카우트하는 게 더 낫겠다"고 농담을 건넸다. 그 농담은 밥의 삼성행이 확정되면서 현실이 됐다. 밥은 곧바로 서울에서 근무하게 됐고, 켈리는 미국 살림을 정리하기 위해 두 달 뒤 합류하기로 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이들은 한국 지식이 거의 없었다. 일본과 함께 월드컵을 개최하는 나라 정도로만 생각했다. 혼자 서울에서 생활하던 밥은 월드컵 선풍을 경험했다.

"모든 동료들이 붉은 옷을 입은 채 근무하는 것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월드컵이 끝난 뒤 이 에너지가 업무 능률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습니다."

그는 아내 켈리가 월드컵 열풍을 체험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켈리가 합류한 뒤 이 부부의 직장 생활은 어려움이 많았다. 분초를 쪼개 사는 한국 직장인들의 업무 스타일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국 서부에서 여유롭게 생활하던 습성이 쉬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밥은 "한국 직장인들은 너무 시간과 공간에 얽매여 일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켈리는 아직도 동료들과의 의사소통 때문에 힘들어 한다. 이 때마다 켈리는 밥에게 도움을 청했다.

켈리는 "말은 제대로 안 통해도 동료들과 원활하게 의사 소통을 하는 남편을 보고 존경심마저 생겼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의 제스처를 유심히 지켜보는 버릇이 생겼다.

"영어를 잘하는 동료들이 많아 고맙고 다행스러워요. 하지만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고객들의 불만에 한국어로 응답해 주고 싶어요" 켈리의 소망이다. 지난 9월에는 회사의 배려로 한국 전통혼례도 올렸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 센터 웨딩홀에서 열린 전통혼례에서 켈리는 큰절에 익숙하지 않아 자주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두사람은 업무 분야는 다르지만 서로의 일에 대해 너무 잘 안다. 처음 미국 모토로라에서 만났을 때는 엔지니어로 같은 일을 했다. 서울 삼성동 집에서 통근버스로 함께 출·퇴근한다. 사무실은 떨어져 있지만 점심 식사는 구내식당에서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즐겨 먹는 음식은 비빔밥. 그래서 동료들이 '비빔밥 부부'라는 애칭까지 붙여줬다. 퇴근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국어 책을 편다. 한국어 학습 경쟁이 붙은 것이다. "부부싸움요. 한국을 배우고 한국 문화를 익히느라 싸울 틈이 없어요." 밥의 말이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1969년 1월생(미국 버지니아) ▶퍼듀대 졸업,애리조나 스테이트대 MBA 취득 ▶94∼98년 모토로라 ▶98∼99년 퀄컴 ▶99∼2000년 IBM ▶2000년 센터포인트 브로드밴드 테크 ▶2000년 10월 14일 결혼▶2001년 일립시스 디지털 시스템스 ▶2001∼2년 퀄컴 ▶2002년 5월 삼성전자 입사

켈리

▶1975년 5월생(미국 노스 다코타) ▶렌셀레어 공대 졸업 ▶97∼98년 모토로라 ▶98∼2002년 퀄컴 ▶2002년 7월 삼성전자 입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