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찰제 패키지… 4년뒤 上場 목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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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부르는 게 값이고 얹고 얹어서 왕창 뒤집어씌워도 손님은 아무 말 못하는 장사, 깐깐하기로 이름난 일본인들도 어쩌겠느냐며 당하고만 있는 장사….

일본에도 아직 이런 사업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겠지만 바로 장의업이 그런 사업이다.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고는 있지만 업종의 특성상 좀처럼 개선되지 않던 분야다.

그러나 기존의 관행을 철저히 깨부순 신형 장의업체가 등장하면서 업계 전체에 혁신의 바람이 일고 있다.

체이스 맨해튼 은행 출신에다 미국서 MBA를 받은 다카미 노부미쓰(高見信光·34) 사장이 2000년 창업한 에폭 재팬은 일본에서 최초로 정찰제 패키지 장의서비스를 도입해 일약 유명해졌다.

에폭 재팬이 기존업체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는 점. 에폭 재팬은 장의요금의 근거를 보여주기 위해 자세한 견적서를 고객에게 제출하고 설명을 곁들인다.장례식을 치르는 도중 이것 저것 추가로 들어갔다며 별도요금을 달라는 법이 없다.

값도 파격적으로 싸다. 일본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평균 장례비는 1백31만엔(약1천4백만원)으로 미국의 3배, 영국의 11배에 달한다. 대도시 중산층 가정에서는 2백만엔을 훌쩍 넘는다.

이에 비해 에폭 재팬은 장례식장 임대료·장례용품비·화장비·답례품비·조문객 음식접대비 등을 모두 포함한 패키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옵션에 따라 가격을 40만∼1백만엔까지 4단계로 나눴다. 유가족이 형편에 따라 고르라는 것이다.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아웃소싱 덕분이다. 기존 장의업체들은 영구차나 장례식장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에폭 재팬은 수억엔에 달하는 초기 설비투자를 없애 몸집을 가볍게 했다. 위탁업체에 대해서는 서비스 관리를 철저하게 해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안 나오게 하고 있다.

에폭 재팬은 또 '장의업도 서비스업'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마케팅에도 적극적이다. 장의업계에서 터부시되던 광고를 하는가 하면 예약할인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패키지상품에는 '파미유'라는 브랜드까지 붙였다. 이것이 먹혀들어 고령자나 중환자가 있는 가정에서 예약도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창업후 2년간 치른 장례식은 1천7백여건으로 건당 평균매출은 90만엔이다.

다른 업체에 비하면 건당 매출액이 적지만 그래도 이익이 남는다고 한다. 거꾸로 말하면 기존 업체들의 가격이 턱없이 비싸다는 얘기다.

자본금 4천3백만엔, 사원 5명의 에폭 재팬은 2006년 말 주식을 공개해 '상장 장의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yhnam@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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