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 멜로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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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하루 24시는 길다. 김하늘(24)에겐 그랬다. 서울의 강남북을 종단했다.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오늘도 성장해가는 자신을 느꼈다. "그래, 이런 기회가 자주 있겠어"라며 스스로 달래며 카메라와 씨름했다. 내년 2월 개봉할 코미디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감독 김경형). 시나리오를 받는 순간 너무 재미있어 끼니조차 거를 뻔했다. "정말 내 영화잖아"라는 욕심이 생겼다. 평소 하늘하늘 코스모스처럼 비쳤던 자신을 생명력 강한 들꽃처럼 알릴 작품으로 생각했다. "이를 꽉 물고 연기하겠다"고 다짐했다.

오전 11시 서울 청담동

지하철 7호선 청담역. 휴대전화를 든 여대생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으악! 전화받네? 야아∼ 김지훈. 나 안보고 싶었어." 소리가 쩌렁쩌렁하다. "김하늘 맞아?" 걸음걸이도 씩씩하다. 출구를 빠져나온 하늘. 50m 전방의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한바탕 웃어댔다. "푸하하∼." 거침이 없다.

김하늘이 껍질을 깨고 있다. 그간 드라마에서 자주 비쳤던 청순함을 벗어던진다. 여성스럽다, 차분하다, 가냘프다의 대명사로 각인된 이미지를 바꾸려고 애를 쓰고 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스물한살 청춘의 좌충우돌, 우왕좌왕 폭소 코미디. 과외를 안하면 등록금을 댈 수 없는 억척스러운 여대생 수완(김하늘)과 과외를 안받으면 아버지에게 신용카드를 뺏기는 말썽꾸러기 고교생 지훈(권상우) 사이의 알콩달콩 사랑 만들기다. 목표도 특이하다. 대학 합격이 아니다. 각종 불량기로 고교를 2년 꿇은 재력가 아들 지훈의 졸업장 쟁취가 지상 과제다.

김하늘은 닭집 딸이다. 닭을 잡아 배달하고, 말을 듣지 않는 지훈을 윽박지르고, 남에게 맞으면서도 끝까지 덤벼들고 등등, '터프 걸'로 나온다.

이날 장면은 수완이 오랜 가출로 연락이 끊겼던 지훈과 겨우 통화에 성공하는 장면. 약간의 비음이 섞여 오히려 귀여운 그의 목청이 한껏 올라갔다.

오후 8시 덕수궁 돌담길

가을의 맛은 밤에 더하다. 노란색 나트륨 등을 받으며 바람에 일렁이는 낙엽들. 살수차에서 비를 뿌려대니 한층 정취가 돋는다. 제작팀에서 덕수궁 주변의 낙엽을 1백ℓ짜리 쓰레기 봉투 네개에 담아와 보도블록에 뿌렸다. 그 옆엔 빨간 공중전화 부스….

검정 우산 속의 두 남녀. 짝사랑하던 선배에게 실연당한 수완이 술에 취해 제자 지훈의 목을 감싸고 있다. 제자의 눈엔 말괄량이 스승이 여자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수완의 입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지훈의 가죽잠바를 더럽힌다.

"드라마 '로망스'에 이어 또 제자와 사랑하네요."

"그땐 진정한 교사였고 이번엔 선생님이라고 할 수 없어요."

"이미지 변신이 부담스럽죠?"

"물론 위험부담이 크죠. '로망스' 때도 약간 망가졌는데 시청자가 좋아하더라구요. 이번엔 훨씬 더 과격해지죠. 태권도도 하고 패러글라이딩도 해요. 섹시한 막춤도 추죠. 가장 재미있는 건 팍팍 가슴에 와닿는 대사입니다. 업그레이드된 저를 약속할 수 있어요."

오전 1시 세종문화회관

지훈이 부릉부릉 BMW 오토바이의 시동을 켰다. 수완이 지훈의 등에 바짝 붙었다. 세종문화회관 앞 세종로를 출발한 지훈의 오토바이. 수완을 태우고 내달렸다(질주 장면의 지훈은 대역). 을지로 쁘렝땅 백화점을 지나 설렁탕 집에서 간단한 요기(오전 2시). 자리를 다시 강남으로 옮겨 매리어트 호텔·삼성역 부근에서 남은 분량을 찍고 오전 5시가 넘어 하루를 마감했다.

"산악영화 '빙우'도 찍고 있는데."

"여기선 그 영화 얘기 꺼내시면 곤란한데요…."

"겹치기 출연은 좋지 않을텐데."

"촬영 일정이 꼬였어요. 지금껏 동시에 두 작품 한 적이 한번도 없거든요. 젊으니까 도전할 수 있다, 또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김하늘은 1998년 '바이준'으로 TV보다 스크린에 먼저 입문했다. '닥터K''동감'에 이어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2년 만의 영화 외출이다. "주로 드라마에 나오다 왜 갑자기 영화 욕심이 생겼느냐"고 묻자 "그간 영화 얘기가 몇번 나왔으나 계속 지연됐다"고 답했다. 아무래도 드라마보다 영화가 자신을 가다듬을 기회가 많기 때문에 두 작품 모두 놓칠 수 없었다고 했다.

김경형 감독의 에필로그. "수완이는 만화 '달려라 하니'와 비슷해요. 하늘이의 기존 이미지를 뒤집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로망스'가 그의 숨겨진 발랄함을 암시했다면 이번 영화는 그 완성판이 될 겁니다. 할리우드 배우 멕 라이언의 느낌을 자주 받아요."

"감독님. 고마워요."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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