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단일화 '反昌' 야합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의원에게 후보 단일화를 공식 제의했다. "정책이 다르면 정당을 달리해야 한다"면서 후보 단일화론을 비판해온 盧후보의 행보를 생각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변화다. 盧후보의 변신이 외부 압력에 의한 것인지, 집단탈당 러시를 차단하려는 전술적인 것인지, 鄭의원 압박용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오래 전부터 11월 들어 '반(反)이회창 연합'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고 보면 음모론적 시각도 가능하다. "정책에 현격한 차이가 있으나… 李후보가 집권하면 한반도를 전쟁 공포로 몰아가고"운운하는 논리에서도 '반창(反昌)' 각오가 읽힌다.

그러나 무엇이 대선을 불과 40여일 앞두고 20여명의 의원이 탈당의사를 밝히는 난파선의 혼미상황을 만들었는지 盧후보는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당사자들의 철새 행각도 딱하지만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데는 이 정권 담당 핵심들의 책임이 크다. 국정을 오죽 엉망으로 했으면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몸담았던 조직에 침뱉기를 예사로 하겠는가. 얼마나 장래성을 못보여줬기에 자기네가 뽑은 대선 후보를 헌신짝 버리듯 할 것인가. 대선 뒤 당을 헐고 다시 짓겠다고 벼른 게 盧후보 자신이다. 이런 마당에 무슨 명분으로 후보 단일화를 다시 이룰 수 있을 것인가.

盧후보는 국민경선을 통해, 鄭의원은 후보 간 합의에 의한 단일화를 고집하고 있어 성사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후보 단일화가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명분과 절차가 없는 한, 그것은 집권 하나만을 노린 정치적 야합에 불과할 것이다. 아무리 경선위원장에 의해 사기극이라고 매도된 국민경선이라도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盧후보 단일화 주장이 설득을 얻으려면 새롭게 국민경선을 거쳐 두 후보 간 정강·정책의 철저한 점검을 하고 합치점을 찾은 뒤 경선으로 후보를 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 단일화는 정치 술수에 의한 정치적 야합일 뿐이며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