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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한 鐵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8면

좋은 음식을 만들려면 요리사의 기술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신선한 재료를 잘 다듬어 이용해야 한다. 제품도 마찬가지다. 좋은 소재와 부품이 좋은 제품을 만든다. 따라서 제조업체나 유통업체에서는 전문 바이어나 머천다이저를 기용해 부품업체를 엄선한다. 구매가 마케팅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요즘 제품 소재를 만드는 산업재 회사들의 광고가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포스코 광고(사진)다.'철(鐵)'하면 차갑고 무거운 느낌을 주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물건들이 철로 만들어졌다. 철이 없다면 석기시대로 돌아가야 할 형편이다.

2년 전 민영화되면서 조직과 문화를 혁신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키운 포스코가 인간과 철의 관계를 잔잔한 시리즈로 엮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아기와의 첫 만남을 가능하게 해 준 가위도, 흑인 마을에 의료진을 실어 나른 기차도, 숲속 아이들에게 길을 알려준 나침반도, 시각장애 소녀의 플루트 연주를 가능하게 한 점자제판기도, 그리고 그 악기 조차도 모두 철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광고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철은 소리없이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최근 광고에서는 거칠게 출렁이는 파도 위를 헤치며 나아가는 철선과 노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깊게 파인 주름은 험난했던 인생 여정을 말해주지만 만선의 기쁨으로 갑판 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은 그래도 살아봄직한 인생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한편의 휴먼 드라마다.

이외에도 '디지털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라는 광고를 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전문메이커 삼성 SDI,'자동차 안의 첨단 기술'을 앞세운 부품업체 현대 모비스, 기타 타이어 제조업체, 건축자재 회사 등이 소재광고·소재 브랜딩이라고 하는 하나의 커다란 마케팅 조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 왜 이러한 회사들이 광고를 해야 하는가? 소재, 즉 산업재에 대한 수요는 소비재에서 파생되는 이차적인 수요다. 그러나 소재회사에서 직접 적극적으로 소비자들로부터 인지도를 높이고 수요를 이끌어내면 제조업체들의 수요는 이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컴퓨터 마이크로 프로세서(CPU)를 공급하는 미국의 인텔사는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광고로 소비자 시장과 제조업체 시장이라고 하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요리할 때 눌어 붙지 않도록 프라이 팬 코팅에 쓰이는 테플론을 개발한 듀퐁사도, 방수·통기가 뛰어나 우비·등산복·신발 등에 쓰이는 고어텍스를 생산하는 고어사도 소비자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

좋은 메이커 뒤에는 항상 훌륭한 부품전문회사가 있음을 생각하며 앞으로 이러한 소재회사 광고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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