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9단의 비명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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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제6보

(85~92)=흑의 젖힘과 백의 절단은 다같이 확신을 내뿜고 있다.과연 누구 쪽이 옳을까. 李9단이 10분을 장고한 뒤 87에 뻗어 덩치를 키우자 胡7단은 노타임으로 88 뻗어 촌보도 늦추지 않는다.

89, 드디어 李9단은 원하던 곳을 두드렸다. 오랜 계획을 완성시키는 수. 이 수가 없었다면 李9단이 이곳에서 그토록 강력하게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참고도' 백1로 이으면 흑은 2로 살아간다. 이 돌이 살아가면 좌변 백도 삶이 급해지고 그 돌이 사는 동안 중앙 흑도 저절로 수습된다. 이것이 李9단의 계획이었다. 사실 흑 두 점이 살아가면 폐석이었던 흑⊙ 두 점도 슬슬 숨을 쉬게 된다. 이것은 백이 서서히 무너지는 그림일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수가 있었다. 바로 90으로 웅크리는 수였다. 천하의 李9단도 이 수를 당했을 때 속으로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홍태선8단)

90은 실리의 손해가 엄청나서 보통 때는 전혀 쓰이지 않는 수. 그러나 지금은 중앙 흑 두점의 퇴로를 막아버린 묘수가 되고 말았다. 李9단은 아마도 90을 깜박했을 것이다. 이 수를 예측했다면 최소한 87과 88의 교환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91은 부득이하다(92 자리에 끊으면 백A로 그만이다). 실리는 벌었지만 요석을 잃어버린 탓에 중앙 흑은 걷잡을 수 없이 엷어졌다.

박치문 전문기자

daroo@joongang.co.kr

협찬:삼성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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