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마취제 펜타닐 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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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모스크바·서울=안성규·정효식 기자] 지난달 러시아 특수부대의 모스크바 인질극 진압작전 과정에서 1백17명의 인질을 숨지게 한 괴(怪)가스는 마약 성분의 초강력 마취제인 '펜타닐'인 것으로 드러났다.

유리 셰브첸코 러시아 보건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성명에서 "진압작전에 사용된 가스는 수술용 마취제로 사용되는 펜타닐 혼합물"이라며 "러시아는 '화학무기금지조약'이 금지하는 물질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공식 해명했다.

셰브첸코 장관은 또 "이 물질 자체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지 않는다"며 "비극은 인질들이 억류돼 있는 동안 굶주림과 저산소증과 탈수증상을 보이면서 빚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외무부도 이날 "진압과정에 사용된 약품은 러시아 국내법은 물론 어떤 국제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펜타닐은 1950년대 말 벨기에에서 처음 발명된 아편제제의 합성물질로, 같은 아편계열의 모르핀·헤로인보다 1백배 이상의 효능을 가진 초강력 진통·마취제다.

투약한 뒤 5분 내 중추신경계 감각을 마비시키고 과다 투약하면 호흡정지로 사망할 수도 있어 주로 말기암 환자나 만성질환자·심장수술 환자들에게 처방된다.

이와 관련, 외신들은 러시아 정부가 펜타닐을 이용해 새로운 화학무기를 개발했을 가능성에 대한 의혹을 31일 추가로 제기했다.

영국의 BBC방송은 "펜타닐은 분말이나 수용액 형태로 돼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가스처럼 흡입할 수 없다"면서 "펜타닐을 재료로 한 새로운 가스무기가 개발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전했다.

또 독일 뮌헨대학이 풀려난 독일인 인질들의 혈액과 소변에서 수술용 마취가스인 '할로세인' 성분을 검출함에 따라 펜타닐과 할로세인을 합성한 신종 화학무기가 개발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러시아의 RIA노보스티 통신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국방신기술연구소가 펜타닐을 기초로 한 화학무기를 연구해 왔다"면서 "9·11 이후 미국의 테러 진압부대도 펜타닐 성분이 포함된 진정제를 사용해 왔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 억류된 알 카에다 포로들에게도 미군이 이 가스를 사용했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는 "연구소가 사용을 추천했지만 화학무기금지조약에 저촉될 우려가 있어 개발을 중지시켰다"며 "펜타닐 성분의 무기는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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