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기씨<현대重 당시 부사장> 2주째 '의문의 잠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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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영기(李榮基·59) 전 현대중공업 부사장. 그는 이익치(李益治·58) 전 현대증권 회장과 '국민통합 21'의 대선후보인 정몽준(MJ) 의원 간에 벌어지고 있는 '현대전자 주가조작 개입 의혹' 공방을 종식시키는데 결정적 인물로 꼽힌다. 李전회장은 전모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 李전부사장을 지목했다.

그는 이익치씨가 도쿄(東京)에서 MJ를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기 1주일 전부터 잠적했다. 아주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자신이 먼저 연락할 뿐 휴대전화도 꺼놓았다. 지난달 30일 본사 기자와 통화가 됐으나 "할 말이 없다"며 이내 전화를 끊었다. 이영기씨의 부인은 "2주 전에 집을 떠났으나 연락은 된다"고 말했다.

그는 1997년 초부터 현대중공업에서 자금 담당 부사장으로 일했다. 그래서 98년 4월부터 11월까지 벌어진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에서 현대중공업이 1천8백억원의 자금을 동원할 때 결재를 했던 인물이다.

그는 또 97년 현대전자가 현대투신 주식을 담보로 캐나다 은행인 CIBC로부터 외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이 지급보증을 설 때 사인을 했다. 이 사건이 2000년 7월 소송으로 번지자 책임을 지고 그해 말 고문으로 물러났다. 1년간 고문을 지낸 뒤 지난해 말 회사를 떠났다.

그는 왜 침묵하고 있을까. 우선 두 사람의 관계를 살펴보자. 두 사람은 고교(이영기-경북고, 이익치-경기고)는 다르지만 함께 서울대 상대를 다녔다. 이영기씨가 선배다. 현대 계열사 사장 출신인 A씨는 "두 사람은 매우 친하다. 이영기씨가 이익치 전 회장을 욕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친분'때문에 李전회장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 발언을 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설명이다.

李전부사장은 최근 절친한 동료인 현대 계열사 B부사장을 만나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의 진실은 검찰에서 얘기를 다했다"면서 "내가 언론에 나서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 계열사 C사장은 "李부사장이 미묘한 입장에 처했다"면서 "이전투구(泥田鬪狗)에 휘말리기 싫어 잠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이익치와 MJ 두 사람 중 누군가와는 적(敵)이 돼야 하는 입장 때문이다.

김동섭·강병철 기자

don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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