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8信]한국산 중고 승합차 4만여대 거리 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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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랍어로 이라크는 '뿌리깊은 나라'라는 뜻이다. 하지만 '기름 위에 떠 있는 나라'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다. 확인된 원유 매장량만 1천3백억배럴로 세계 2위다.

실제 매장량은 이보다 훨씬 많고 경제성도 다른 산유국들에 비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공보부 직원 느사이프 자심 모하메드(30)는 "아무 땅에나 파이프만 꽂으면 기름이 쏟아져 나온다"고 농 섞인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만큼 기름 값도 싸다. 바그다드 시내의 휘발유 가격은 ℓ당 15원에 불과하다. 고급유라고 해봐야 40원 정도다. 에너지 절약이라는 말이 있을 리 없다.

이라크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인프라는 시원하게 뚫린 도로망이다. 인근 시리아나 요르단, 페르시아만(灣)으로 빠지는 고속도로가 왕복 6차선으로 닦여 있다. 유엔의 제재로 10년 이상 보수하지 못했다는 도로지만 표면에 땜질 자국 하나 없이 미끈하다. 여름철 섭씨 60도가 넘어가는 더위를 너끈히 견뎌내는 아스팔트가 신기할 정도다. 원유 수송 차량을 위한 전용도로도 따로 있다.

유엔의 제재 여파로 많이 후퇴하긴 했지만 기술력도 상당하다. 걸프전 때 폭격으로 파괴됐던 티그리스강의 현수교 '7월 14일(이라크 공화국 수립 기념일)의 다리'도 순수한 이라크 기술로 복구해 냈다.

이처럼 남부럽지 않은 인프라 위에 있는 이라크의 현실은 너무도 보잘 것 없다. 이라크에서 가장 흔한 승용차는 독일 폴크스바겐의 파사트다. 한국산 포니를 빼닮은 1970년대 모델로 대부분 주행거리가 40만㎞를 넘은 고물들이다. 20만㎞가 넘지 않은 것은 새차에 속한다. 승합차의 경우 모두 기아자동차의 베스타나 봉고라고 보면 된다. 'OO속셈학원''××독서실'이라는 한글 문구가 선명한 승합차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중고차 대리점을 경영하는 알리 압둘 카림(50)은 "한국산 승합차 4만여대가 들어와 수송 문제가 많이 해결됐다"고 전했다.

기름은 넘쳐도 발전 설비를 보수하지 못해 전력 사정도 좋지 않다. 바그다드 시내조차 하루 두시간씩 단전을 한다. 바그다드를 조금만 벗어나도 수돗물이나 전기 시설이 없는 학교들이 수두룩하다. 의약품 부족은 너무나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래도 이라크인들은 자신만만하다. 정부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제재만 풀리면 경제 재건은 시간문제라고 장담한다.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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