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도청의혹 수사" 金대통령에 직접 검찰수사 언급 촉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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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도청(盜聽)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둘러싸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혼선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盧武鉉)후보가 도청의혹에 대한 검찰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나아가 盧후보는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검찰수사를 언급해야 한다고도 했다. 29일 청주에서 열린 방송토론회에서다.

盧후보는 이날 "어떤 경우에도 도청이 허용돼선 안된다"며 "도청을 말한 사람은 국회에 관련자료를 제출하고 혐의가 있다면 검찰은 단호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검찰의 중립성 때문에 말하는 게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나서서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국정조사보다 한 단계 높은 검찰조사를 촉구한 盧후보의 발언은 현실적인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기보다는 탈(脫)DJ노선의 일환으로 보인다. 감정적·정서적 차별화보다 사안별로 할 말은 하겠다는 입장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실제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민주당 정균환(鄭均桓)총무는 29일 전화 접촉을 통해 절충을 시도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특히 국정조사의 성격에 대한 해석에는 아직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중 핵심이 청문회를 하느냐, 마느냐다. 鄭총무는 "당초 총무 간 합의사항은 국정원의 도청의혹설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감청시설을 현장검증하자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국가 중추 정보기관을 공개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청문회 불가'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李총무는 "TV 중계는 아니더라도 비공개 청문회는 열어야 한다"고 맞섰다.

한나라당은 청문회를 통해 '국민의 정부에서 불법 도청이 이뤄졌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는 생각이다. 도청사실이 확인될 경우 현 정권은 도덕성에 결정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국정원 도청자료'라며 폭로한 박지원(朴智元)청와대 비서실장-요시다 다케시(吉田猛)신일본산업 사장, 한화 김승연(金昇淵)회장-청와대 김현섭(金賢燮)민정비서관의 통화내용에 대해 추궁할 방침이다.

민주당 鄭총무는 "국정원이 도청한 사실이 없다는 게 입증되면 허위사실을 조작, 폭로한 사람은 책임지고 정치권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정형근 의원을 겨냥했다. 이를 위해 정통부·감사원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감청시설 조사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신건(辛建)국정원장이 거듭 "국정원의 감청시설을 의혹이 풀릴 때까지 무제한 공개해 조사받을 용의가 있다"고 공언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정민 기자

jmlee@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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