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國調 합의·부인 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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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정원 도청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놓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민주당 정균환(鄭均桓)총무는 28일 오전 "국정원 도청 관련 의혹 확인 및 검증을 위한 국정조사를 정보위에서 실시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곧바로 해석문제로 논란이 벌어졌다.

李총무는 증인을 상대로 의원들이 신문하는 청문회 형식의, 일반적인 국정조사라고 주장했다. 반면 鄭총무는 "국정원 내 도청시설 확인을 위한 정보위의 현장조사"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鄭총무는 '국정조사'란 이름을 붙인 이유를 "감사원과 정통부의 장비나 전문인력을 지원받기 위해선 국정감사 및 조사법 제15조 2항을 원용하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의 핵심은 청문회와 증인채택을 할 수 있느냐다. 鄭총무는 "증인채택과 청문회는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반면 李총무는 "증인채택과 청문회 개최가 가능한 국정조사 실시에 민주당 鄭총무가 합의해 놓고도 이를 뒤집었다"고 비난했다.

이에 따라 국정조사 전망은 불투명해졌다.

무엇보다 국정원 측이 '청문회 방식'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건(辛建)국정원장은 "현장검사는 기꺼이 받을 수 있지만 정보기관을 통째로 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대선을 코앞에 두고 국회가 청문회와 증인채택 방식으로 정보기관을 조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특정 정파가 국정원의 무장해제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증인채택 문제도 난관이다. 李총무는 "신건 원장뿐 아니라 이종찬(李鍾贊)·천용택(千容宅)전 원장도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현 1·2·3 차장들도 국회에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문회 내용도 일정부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李총무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국정원 현장조사 형식은 면죄부를 주는 요식절차가 될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민주당 쪽은 펄쩍 뛰고 있다. 鄭총무는 "엄격한 의미의 국정조사가 아니라 상임위 차원의 현장조사일 뿐이다. 다만 외부의 기술적 지원문제 때문에 용어만 '국정조사'를 사용했을 뿐"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민주당은 청문회가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정보위 주관의 비공개 청문회여야 하고, 반드시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도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도·감청 논란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선 鄭의원이 확보하고 있다는 '국정원 도·감청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鄭의원은 "국정원의 태도를 봐가며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鄭의원의 자료 공개는 출처 논란 때문에 한나라당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민주당은 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공적자금 청문회처럼 이번에도 증인선정에 가로막혀 공전될 가능성이 크다.

김정하·서승욱 기자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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