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드-오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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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르드-오스트'는 러시아어로 북쪽을 의미하는 노르드와 동풍(東風)을 뜻하는 오스트를 결합한 것으로 모스크바에서 지난 1년 동안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뮤지컬 이름이기도 하다.

최근 며칠 사이 일단의 체첸 분리주의자들이 이 뮤지컬이 공연 중인 극장을 장악하고 인질극을 벌이면서 이 '노르드-오스트'가 우리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됐다.

모스크바 인질극은 우리에게 21세기 디지털시대에도 애국주의 비극의 한 장면이 세상에 실존함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의미뿐 아니라 이번 사건엔 문화적으로도 비극적 상징들이 무수히 결합돼 있다. 우선 뮤지컬 '노르드-오스트'의 상징성이다. '노르드-오스트'는 소련시절 베냐민 카벨린이 쓴 소설 『드바 카피타나』(두 팀장)를 각색한 것이다.

『드바 카피타나』는 20여년의 세월을 두고 북극 탐험에 나선 탐험대원들의 우정과 사랑, 배신과 진실의 폭로 등을 통해 소련의 강대함과 국가주의에 헌신하는 애국적 행동의 중요성, 명예, 가족의 순결함 등을 최고의 덕목으로 묘사하고 있다.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외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등장 후 러시아 문화계는 카벨린의 이 작품을 각색한 후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적 요소를 가미해 푸틴에게 화답하는데 그게 바로 '노르드-오스트'였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상업주의, 서구화의 물결에 뒤덮인 모스크바의 현실을 감안하면 '노르드-오스트'는 상업적 성공이 매우 불투명한 것이었다. 때문에 이 뮤지컬은 유명극장들이 아닌 모스크바 시외곽에 위치한, 한때 베어링 공장이었던 두브로프카 극장센터 내 '돔 쿨트르이'(문예회관)를 빌려 공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10월 공연을 시작하자마자 이 작품은 애국주의 고취의 분위기를 타고 가족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공연 후 관람객들은 열띤 감동을 받았고 이 연극은 이러한 열기를 타고 앞으로도 1년 6개월 이상 공연될 예정이다.

때문에 체첸 분리주의자들의 '노르드-오스트'에 대한 공격은 바로 이러한 러시아적애국주의에 대한 체첸적 애국주의의 테러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체첸 테러리스트들이 극장에 난입해 총을 난사하던 순간은 극중 주인공에게 막 훈장을 달아주려던 상황이었다. 러시아에 제정 러시아적 낭만과 소비에트 사회주의적 애국심을 선사했다는 '노르드-오스트'와 체첸의 비극적 애국주의의 충돌은 그래서 우리에게도 긴 여운(餘韻)을 남긴다.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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