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북쪽에 넘어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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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과 국제사회의 관계는 핵무기 계획 폐기를 위한 북측의 신속하고 가시적인 행동 여부에 달려 있다"는 한·미·일 3국 정상의 합의는 이제 '공'이 북쪽에 넘어갔음을 말해준다. 지난 26일 멕시코의 로스 카보스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만난 3국 정상들은 북한의 장래가 북측 스스로의 결단에 달렸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미 간 불가침조약을 제의하며 핵 개발 시인 이후 돌파구를 찾으려던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는 국제사회의 공통된 의지를 확인한 셈이다. 동시에 그들이 집착하는 생존과 자주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국면에 처하게 됐다.

하지만 북한이 직면한 현실에 출구(出口)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3국 정상들은 북한에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선제 공격 의사가 없음을 재확인한 것은 북측의 두려움을 부분적으로 불식시켜 주었다. 또 미국은 "북·미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과감한 접근방법을 취할 준비를 해왔다"며 외교적 수사(修辭)로 북측의 조바심을 달래주려는 제스처를 쓰고 있다. 그러나 이런 미측 입장은 새로운 핵 개발 이전의 상태로 복귀하지 않으면 북·미 기본합의의 틀도 무시하겠다는 경고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기에 "남북대화와 북·일 수교 회담을 북한이 신속하고 확실하게 응할 것을 촉구하는 창구로 활용하겠다"는 표현은 양자 간 대화보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압박에 우방의 동참을 촉구하는 인상을 준다.

'공'은 다시 북쪽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한·미·일 3국 역시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대북 대화의 연장선 상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진행 중인 남북대화나 북·미 합의에 따른 중유 제공 및 경수로 건설 등이 속도 조절을 통한 외교적 압력 수단이 아니라 전면 중단으로 이어질 경우, 정상들이 합의한 '지역 평화와 안정'이라는 큰 목표 달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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