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양동마을의 지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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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호 30면

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드디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여기에는 두 마을이 품고 있는 풍수지리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필자는 학생들과 함께 두 마을을 여러 차례 답사한 적이 있다. 하회마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양동마을의 경우, 중앙SUNDAY의 발 빠른 심층보도 후 연일 방문객들로 넘쳐난다고 한다. 그때 취재진에 합류해 양동마을 구석구석을 답사하면서 느낀 바 크다.

풍수학상 하회마을이 화려한 꽃이라면 양동마을은 숨어있는 약초 같다. 잘 알려진 대로 양동마을은 물(勿)자 형국이다. 주산인 설창산에서 뻗어 나온 4개의 지맥이 바람을 가두는 형태로 감춰져 있어 완전한 장풍국(藏風局)을 이룬다. 고풍스러운 기와집과 초가집들은 지맥에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등을 댄 모습들이다. 산등성이와 골짜기 높은 위치에 기와집으로 된 반가(班家)들이 자리 잡았고 그 아래에는 하인들이 거처하던 가람집들이 있다. 조선시대 신분제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공간적 특징이다. 물론 초가라고 모두가 노비집인 것은 아니다. 양반가라도 형편에 따라 초가집을 지어 분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골목길을 샅샅이 누벼보자. 다채로운 한옥의 형태를 체험하게 된다. 한마디로 고건축 전시장이다. 조물주가 만든 오묘한 자연형상의 원형을 깨트리지 않고 기막히게 혈(穴)을 찾아내 집을 앉힌 조상들의 안목이 놀랍다. 풍수인의 한 사람으로 고맙기조차 하다.

옥에 티라고 할까. 양동마을에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출입구에 대문이 없는 일부 가옥들에서 받는 휑한 느낌이다. 그런 가옥들은 내외를 가리던 전통을 무시하고 풍수를 외면했다. 특히 출입구가 안채와 일직선인 집들은 길에서도 안방·부엌 등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양반 집이든 상민 집이든 안채의 생활공간을 외부에 보이지 않는 게 우리의 오랜 전통 아니던가. 출입구에 대문이나 내담 같은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은 안채의 사생활 보호의 목적도 있지만 앞에서 부는 바람과 집의 지기(地氣)가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려는 풍수 비보(裨補)의 목적도 있다. 이를 보완한다면 손색없는 전통마을, 역사마을이 될 수 있을 게다.

하회마을은 풍수를 배우는 이들의 필답 코스다. 그래서 블로그에 답사기도 많이 올라와 있다. 이들이 붙인 마을 형국 명칭 또한 가지각색이다.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 다리미형, 행주형(行舟形),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등등. 풍수형국이란 것이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보는 이의 주관에 따라 호랑이를 개로, 봉황을 닭으로, 지렁이를 용으로 볼 수도 있어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명확한 술법은 아니다. 그렇다고 제멋대로 형국 명칭을 붙여서야 되겠는가.

이 마을에 붙여진 형국 명칭 ‘산태극수태극’은 산(陰)과 물(陽)이 서로 반대로 돌며 음양 화합의 형태를 표현한 풍수 용어일 뿐이고, 다리미형은 풍수 문헌 어디에도 없는 명칭이다. 풍수형국론에 의하면 이 마을의 형국은 연화부수형과 행주형이 옳다.
하회마을은 본래 풍수 조건에 결함이 많은 터였다. 마을 서쪽의 원지산과 북쪽의 부용대 사이, 즉 서북쪽 건해방(乾亥方)이 낮아 겨울이면 세찬 북서풍의 피해를 받게 된다. 풍수에서 건해풍은 황천살(黃泉煞)로 보고 그 피해가 가장 극심하다고 했다. 건해풍은 마을의 지기를 흩어버리게 할 뿐 아니라 가끔씩 커다란 재앙을 가져다준다. 이를 막기 위해 하회에서는 그곳에다 만송정이라는 소나무 숲을 조성했다. 만송정은 허함을 보완해주고 바람과 모래를 막는 방풍림·방사림 역할을 하면서 홍수 때는 낙동강의 범람까지 막아주는 방수림(防水林)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인공적인 비보 숲 조성으로 오늘날의 하회마을이 된 것이다. 답사하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류재백 대구 한의대 대학원 졸업 뒤 20여 년간 현장 답사와 고증을 통해 풍수학에 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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