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은 최고의 액세서리 한국 여성 얼굴에 색깔 찾아주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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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제임스 베이머 수석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창립자 프랑수아 나스와 함께 ‘나스(NARS)’의 성장을 이끈 인물이다. 신인섭 기자

‘역사(혹은 전통)’의 그림자는 ‘정체(停滯)’다. 세계에서 제일 역사가 긴 화장품 회사는 일본의 ‘시세이도(資生堂)’다. 1872년 설립된 서양식 조제약국이 기원이다. 현재 세계 4위 화장품 회사다.

시세이도의 고민은 성장이다. 2000년대 들어 연간 매출액 증가율이 5%를 넘지 못했다. 국내 1위인 아모레퍼시픽이 연간 약 10%씩 성장하는 것과 비교된다. 시세이도는 지난해부터 3년간의 마케팅 전략으로 ‘도회적 콘셉트(City Concept)’를 잡았다. 도시의 소위 ‘트렌드 세터’들을 집중 공략하면 그 파급효과가 주변 시장에도 영향을 미쳐 자연스럽게 매출이 늘어날 것이란 계산이다. 이를 위해 시세이도는 차별화가 가능한 ‘멀티-브랜드’ 전략을 쓰기로 했다. 이 전략의 최전선에 배치된 브랜드 중 하나가 2000년 인수한 미국 메이크업 아티스트 브랜드 ‘나스(NARS)’다.

나스는 1994년 프랑스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프랑수아 나스(이하 프랑수아)가 만들었다. 프랑수아는 수퍼모델 케이트 모스와 나오미 캠벨,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마돈나 등 스타들의 캐릭터를 창조했다. 메이크업(색조화장) 제품에 강점이 있다. 특히 미국 뉴욕의 젊은 여성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 국내에는 정식 소개되지 않았지만 ‘아는’ 사람들의 파우치(화장품 가방)에는 나스가 하나씩은 들어있을 정도다.

나스가 이달 중 서울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 WEST에 첫 매장을 오픈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방한한 이 브랜드의 수석 메이크업 아티스트 제임스 베이머를 만났다. 그는 95년부터 프랑수아와 함께 일하면서 나스를 키워 냈다.
 
-이제야 한국에 진출한 이유는 뭔가(일본에는 시세이도가 나스를 인수한 이듬해인 2001년 첫 매장이 문을 열었다).
“나스는 완벽을 추구한다. 외형 확장보다는 소비자 만족이 더 중요하다. 섣불리 매장 문을 열지 않는다. 소비자가 나스에 열광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이 갖춰줬다고 생각해 진출한 것이다.” (옆자리 앉아 있던 줄리아 슬론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최고 담당자가 덧붙였다. “때를 기다렸을 뿐이다. 지난해 나스는 30% 성장했다. 확장을 고려할 시점이다. 한국의 첫 파트너로 갤러리아를 택했다. 나스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들의 화장에 대해 평가해 달라.
“한국 여성들은 놀라울 정도로 깨끗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 피부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고 들었다. 그런데 얼굴에 색상이 없다. 화장이라고 해야 눈썹을 정리하고 아이라이너·마스카라를 바르는 정도인 것 같다. 색상에 대해 너무 인색하다. 메이크업은 옷과 더불어 상황에 따라 연출할 수 있는 최고의 액세서리인데도 말이다.”

-전시된 제품을 보니 나스의 장점은 색감인 듯싶다. 다른 편에서 생각하면 너무 선명하다. 한국 여성 취향엔 맞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는 여자다. 어느 나라건 그렇다. 앞서 말했듯 메이크업은 액세서리다. 나스가 색상만을 강조하는 건 아니다. 80년대 두꺼운 화장이 유행할 때 누드 메이크업을 선보인 이가 바로 프랑수아다. 나스에는 자연스러운 연출이 가능한 제품과 더불어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색상이 준비돼 있다.”

-이미 진출한 메이크업 브랜드로 ‘맥’ ‘바비브라운’ 등이 있다. 이들과 비교했을 때 나스의 강점이 무엇인가.
“다른 브랜드의 약점을 지적해 끌어내리고 싶지 않다. 나스만의 강점을 말하겠다. 무엇보다 제품력이다. 입자가 곱고 부드러워 발림성이 좋다. 자연스럽게 얼굴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준다. 또 화장품은 이미지 그 자체다. 나스의 각 제품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름이 붙어 있다(※이 회사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블러시(볼터치) 제품명은 ‘오르가슴’이다. 그외 ‘섹스 힐링’ ‘섹스 머신’ 등을 비롯해 ‘도쿄 타워’ 등 400여 개 제품에 모두 이름이 따로 있다). 이런 이름 자체가 여성이 아름다움에 눈 뜨게 하고 패션에 창의력을 발휘하게 한다. 나스는 트렌드를 좇아가는 게 아니라 트렌드를 창조한다.”

-2000년 시세이도에 브랜드를 팔았다. 무엇이 달라졌나.
“프랑수아가 처음 나스를 만들었을 땐 작은 브랜드였다. 그는 아티스트이지 사업가가 아니다. 그런데 브랜드를 키우려면 재정이 뒷받침돼야 하고 사업 수완도 있어야 한다. 나스가 인기를 끌면서 프랑수아는 한계에 부딪혔다. 경영을 책임질 수 있는 이가 필요했다. 시장에 나스를 내놓았을 때 여러 회사가 관심을 보였지만 주저 없이 시세이도를 선택했다. 그간 시세이도가 아티스트와 공동 작업하면서 아티스트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창의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존중해 줬기 때문이다. 사실 아티스트 브랜드가 그룹에 인수되는 건 흔한 일이다. LVMH(루이뷔통의 모회사)가 마크 제이콥스를 인수한 것처럼.”

-한국 화장품의 경쟁력을 평가한다면.
“난 스킨케어(피부관리)에 거의 중독돼 있다. 스킨케어에 무척 신경 쓰기 때문에 한국 화장품을 잘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번 내 피부관리사가 아모레퍼시픽 출신이었다. 그래서 아모레퍼시픽을 잘 안다. 설화수는 아주 좋은 브랜드다. 마케팅 전략도 좋다. 아모레퍼시픽은 미 뉴욕 소호에 아름다운 매장(아모레퍼시픽 뷰티 갤러리&스파) 문을 열었다. 최고급 백화점이라는 버그도프 굿맨에도 들어가 있고. 여기저기 매장을 내 규모를 넓히는 브랜드와는 다른 전략을 쓴다. 독자적인 고객층 확보에 노력한다. 어쩌면 아모레퍼시픽의 미국 진출 전략과 나스의 한국 진출 전략이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나스의 목표는 두터운 매니어층을 만들어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한국 여성들에게 가장 추천하는 제품이 있다면.
“당연히 ‘오르가슴’(한국 판매가 3만5000원)이다. 나스를 가장 잘 표현한 제품이다. 제품력도 뛰어나고 이름과 포장까지 조화를 이뤘다.”(슬론 커뮤니케이션 최고 담당자는 “내가 나스에 들어오기 전에는 오르가슴을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르가슴 없이는 외출을 하지 않을 정도다”고 덧붙였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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