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접기엔 덩치 너무 커 … 코레일 “협의 여지 남아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사업이 잘 되고 수익이 많이 날 것 같으면 사업비를 조달하는 방식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초 기대보다 사업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투자자들이 위험성을 감수하고 선뜻 자금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아 사업이 흔들리곤 한다.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위기를 맞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동업자들이 종잣돈을 마련하는 데 눈치를 보느라 사업이 꼬인 것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에 발목 잡혀=30개 공공·민간 투자자들은 2007년 사업 추진 이후 지금까지 토지매매 계약금·중도금으로만 1조5000억원 정도를 썼다. 자본금(1조원)과 대출 등으로 마련한 돈이다. 투자자들은 당초 지난해에 땅값 중도금·보상비 등에 필요한 2조원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이 돈만 있으면 일단 착공 직전까지 사업을 꾸려갈 수 있다. 이후에는 초고층 빌딩 등을 팔아 사업비를 조달하면 된다. 하지만 자금 조달 방식을 두고 투자자 간 의견이 엇갈리면서 자금 조달이 늦어졌고, 올 초 냈어야 할 중도금 등 7000억원을 미납했다.

문제의 핵심은 2조원 조달 방식. 땅 주인인 코레일과 사업지분이 많은 전략·재무적 투자자들은 시공사(건설투자자)가 지급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사업비를 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 등 17개 건설투자자들은 “건설투자자만 위험 부담을 지게 된다”며 반대했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코레일은 지난달 20일 토지대금을 납부하라고 최후통첩을 했고 다급해진 일부 투자자가 자금 조달 중재안을 내놨다.

건설투자자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이 갈수록 더 나빠지고 있기 때문에 지급보증 금액을 낮춘다고 해서 사업 리스크가 줄어들진 않는다”고 말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올 3월 프랑스 남부도시 칸에서 열린 국제부동산투자박람회(MIPIM)에 출품되기도 했다. [칸 로이터=연합뉴스]

◆사업 정상화 가능성 남아 있어=이번 사업이 결딴나거나 표류하면 사회·경제적 후폭풍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투자자들이 낸 자본금 1조원이 사라지고, 땅값을 못 받으면 코레일은 고속철도 건설부채(4조5000억원)를 갚고 적자 기업에서 탈피할 기회를 잃게 된다. 서울 서부이촌동 주민 2200여 가구는 2007년부터 재산권 행사를 못하고 있어 사업이 무산되면 민원이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용산구의 땅값·집값 폭락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넘었다고 보기는 이르다. 우선 코레일이 당장 계약 해지에 나설 것 같지는 않다. 코레일 김흥성 대변인은 6일 “중재안이 결렬됐지만 협의할 여지는 남아 있다”고 말했다.

아직 시간적 여유도 있다. 지난해 투자자들이 발행한 자산유동화증권(ABS) 1차 이자 납부일인 다음 달 17일까지만 합의점을 찾으면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은 그대로다. 투자 당사자들의 입장 변화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서다. 익명을 요청한 삼성물산 관계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밝혀 왔듯 시공사만의 지급보증은 안 된다는 게 건설투자자들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 관계자는 “건설투자자들이 사업 의지가 약한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막판 협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두성규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자금난에 따른 대규모 개발사업의 연이은 좌초는 국가 경제적으로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