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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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어미를 따라 잡힌

어린 게 한 마리

큰 게들이 새끼줄에 묶여

거품을 뿜으며 헛발질 할 때

게장수의 구럭을 빠져나와

옆으로 옆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개펄에서 숨바꼭질하던 시절

바다의 자유는 어디 있을까

눈을 세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달려오는 군용 트럭에 깔려

길바닥에 터져 죽는다

먼지 속에서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김광규(1941∼)'어린 게의 죽음' 전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1988)의 시인. 그의 시는 평면적일 정도로 일상에 기대고 있지만, 그건 도식의 남루를 벗어낸 어떤 진실이며 질서다. 목소리는 낮으나 엄청난 사회와 역사에 대한 도전이 언제나 거기 도사리고 있다. 어린 게의 죽음을 '찬란한 빛'으로 보고 있음이 그것. '바다의 자유'가 그 빛의 죽음의 실체이기 때문. 이 시를 읽고 나서 거리에 나가 보라. 아슬아슬하다. '어린 게'들이 종로를 을지로를 테헤란로를 가득 기어다니고 있다. 오, 저 슬픈 횡보(橫步)들―.

정진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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