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싸주고 위로해주는 어머니 품같은 공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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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는 절집이 있고 서양에는 교회와 성당이 있다. 중세까지 이 건축물들은 건축사에서 큰 줄기를 이루는 중심부였다. 역사가 긴 만큼 종교건축은 건축가들이 늘 도전하고 싶어하는 분야다. 고딕 성당들이 하늘로, 창공으로 더 많은 빛을 받으며 뾰족하게 치솟았던 건 신에게, 창조주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은 건축가들 마음 때문이었다. 건축가들 자신이 창조주를 닮기도 했다.

서울 양재동에 선 '기독교 가정사역 연구소'(이하 기가연)는 종교 관련 단체이지만 기존 종교건축을 뛰어넘는 특성으로 사람들 눈길을 끈다. 기가연은 1992년 유엔이 정한 '세계 가정의 해'에 만들어져 지난 10년동안 가정 문제만을 다루어온 전문 연구소다. 가정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가정행복발전소의 구실을 해서 우리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 활동 목적이다.

환경문제보다 더 시급한 것이 가정문제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는 기가연 소장 송길원 목사는 건축주로서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사람들'이란 건축 테마를 내세웠다. 기도와 설교보다는 상담과 교육, 그리고 출판이란 기능이 어우러진 문화 공간이라는 얘기다. 건축을 맡은 박민철 '간향건축' 소장이 처음 부딪쳤던 걸림돌이다. 하늘로부터 지하까지 빛이 관통하는 공간을 계획했던 건축가는 그 빛을 거둬들이는 대신 가정사역에 필요한 따스함을 건물 곳곳에 불어넣었다.

지하 예배당은 어머니의 모태를 상징한 타원형으로 굴리고, 복도는 시골 토담길처럼 푸근하게 휘둘렀다. 다목적실이 온몸을 웅크려 얼굴을 가슴에 묻은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은 가정문제를 신의 품 안에서 솟구치는 감정으로 풀자는 건축가의 뜻을 보여준다. 전체 주제를 인간·공간·시간으로 잡은 박 소장은 건축 외관을 기도하는 인간의 고개숙인 분위기로 형상화했다. 특히 펼쳐진 손가락 모양을 연상한 평면에는 엄지와 검지 사이를 '사이(間) 공간'으로 만들어 대나무 숲을 집어 넣었다. 지하로부터 지상 3층에 이르는 이 사이공간에 솟아난 대나무 숲은 살벌하고 힘겨운 세상을 잠시 잊고 푸른 자연 속에서 자신을, 가족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진흙색 테라코타 타일로 마감한 외부가 아버지 같은 흙내음을 풍긴다면, 백색 칠로 깨끗한 내부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속살처럼 은은한 맛을 자아낸다. 이 건물에 들어선 이들이 가정 문제를 기도와 묵상 속에서 대화로 풀어낼 수 있는 힘이 여기서 솟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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