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가신·功臣에겐 요직 맡기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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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지도자가 되려면 특별한 능력과 품성, 엄격한 자기관리가 요구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대통령 리더십(Presidential leadership)에 대한 연구가 많았고 동양에서도 치인론(治人論), 안민학(安民學), 제왕학(帝王學)이란 이름으로 최고통치자가 어떤 인물일 때 치국(治國)이 되고 어느 때 난국(亂國)이 되는가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실패가 많은 이유의 하나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권력투쟁에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집권 후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관심과 준비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지도자로서 어떤 마음가짐과 행동거지를 가져야 하는가, 어떠한 원칙과 자기관리가 요구되는가 등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그동안 제왕학 없는 제왕적 대통령제,안민학 없는 권위적 대통령제였다.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왕학과 안민학이 필수적이다. 최근까지 백악관에서 4명의 대통령을 보좌했던 데이비드 거겐(David Gergen)은 "대통령 지도력은 지도자 자신의 내부에서 나온다(leadership starts from within)"고 주장한다. "대통령의 정책과 실적은 대통령의 가치관과 윤리 등 내면의 세계와 깊이 관련돼 나타난다. 세계를 지배하기 이전에 자신을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율곡 이이 선생도 "나라의 치란(治亂)은 사람에게 있지 때에 있는 것이 아니다. 때는 지도자가 만드는 것이다. 결국 지도자가 뜻을 세우고 덕을 닦는 것이 바른 정치의 근본"이라고 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어떤 뜻을 세우고 어떤 덕을 닦아야 하는가. 어떻게 자신을 지배하고 어떻게 내면의 세계를 다스려야 하는가.

첫째,정직과 국민 사랑이 있어야 한다. 정직을 통해 그동안 쌓여온 정치불신을 바로잡고 국민에 대한 사랑을 통해 자신의 사심(私心)을 억제해야 한다. 한마디로 무사애민(無私愛民)해야 성공한다. 지도자의 실패는 항상 사심에서 온다.

둘째,국가발전의 비전과 전략의 청사진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라는 공동체가 지향하는 공동의 신념·윤리·도덕·가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 즉 어떠한 가치공동체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국가발전의 정치·경제적 과제와 전략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셋째, 천하의 최고 인재를 폭넓게 모아야 한다. 학연·지연 등을 버리고 전문성과 공공심(公共心)을 기준으로 최고의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권한을 위임하고 한번 믿으면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지혜는 관리의 선택에서 나타난다"고 했다. 데이비드 거겐도 "최고의 대통령 옆에는 항상 최고의 보좌진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넷째, 자신을 낮추고 비판과 의견을 성심성의로 들어야 한다. 지도자의 실패는 자만에서 오고 직언(直言)을 피하는 데서 온다. 하심선청(下心善聽·아랫사람의 말을 잘 듣는 일)해야 한다. 대통령 비서실에 직언과 간언 전담 부서를 두어야 하고 대통령이 학자·언론·종교계·시민사회 등 각계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도화(현대판 經筵制度)해야 한다.

다섯째, 자기관리에 엄격해야 한다. 대통령과 가족의 자산은 제3기관에 공탁해 재임 중 직접 재산관리를 하지 않아야 한다. 친인척 관리를 위한 특별부서도 필요하다. 가신(家臣) 내지 선거공신들은 정치에는 프로이나 국정운영에는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주요 공직을 맡겨서는 안된다.

여섯째, 국정운영시스템의 운영능력이 있어야 한다 .주요 국정 현안을 신속히 파악하는 능력과 국민과의 효과적인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하다. 정치적으로 어려운 정책에 대한 과감한 결단력과 한번 결정 후 밀어붙이는 강력한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끝으로 시대마다 그 시대가 풀어야 할 국가적 과제가 다르기 때문에 요구되는 대통령상(像)이 다르다. 신시대를 열어야 하는 창업(創業)의 시기에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필요하고, 열린 신시대를 합리적으로 관리운영하기 위한 수성(守成)의 시기에는 조화와 타협형 지도자(transactional leader)가 필요하다. 그러나 오래된 시스템의 폐해를 고쳐야 하는 경장(更張)의 시기에는 개혁적·변혁적 지도자(transformational leader)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경장의 시기에 있기 때문에 개혁적·변혁적 대통령이 필요하다. 역사적 통찰력으로 시대 변화를 읽고, 변화의 당위성을 공론화해 제도개혁의 방향을 정하고, 국민을 설득해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고 단호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의지·능력·신념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후원 : The Asia Foundation

◇EAI 프로젝트 참여 교수=박세일(朴世逸·서울대·위원장)·김병국(金炳局·고려대·간사)·김판석(金判錫·연세대)·모종린(牟鍾璘·연세대)·박재완(朴宰完·성균관대)·염재호(廉載鎬·고려대)·이홍규(李弘圭·한국정보통신대)·장훈(張勳·중앙대)·정종섭(鄭宗燮·서울대)·최병선(崔炳善·서울대)·황성돈(黃聖敦·외국어대)

◇토론 참석자=강경식(姜慶植·전 대통령 비서실장)·강봉균(康奉均·전 재정경제부 장관)·김경원(金瓊元·사회과학원장)·김영수(金榮秀·전 문화체육부 장관)·김정렴(金正濂·전 대통령 비서실장)·김충남(金忠男·전 대통령 사정비서관)·노재봉(盧在鳳·전 총리)·박철언(朴哲彦·전 정무장관)·사공일(司空壹·전 재무부 장관)·이종찬(李鍾贊·전 국가정보원장)·이홍구(李洪九·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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