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마·마 신용카드·은행·보험 여성우대 서비스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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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여자라서 행복하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특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서서히 열리고 있다. 금융 소비자로서 여성의 지위에 대한 얘기다.

실례를 한번 들어보자. 국민은행이 얼마 전 선보인 '우먼프리론'은 살림하는 주부에게 1천만원 한도로 신용대출을 해주는 상품이다. 자기 이름으로 된 재산도, 소득도 없는 전업 주부에게 보증이나 담보 없이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물론 남편 또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아파트나 빌라에 살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집을 담보로 잡는 것은 아니다. 신용등급이 나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등급을 설정하는 대상에조차 끼이지 못하는 주부들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은행이 고려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이다. 금리는 연 9.9∼11.9%.상장기업의 신입 직원부터 과장급 직원까지의 신용등급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은행 내에서도 반대가 심했습니다. 지금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어요." 이 은행 마케팅팀 박경숙 과장은 "살림하는 주부들이니까 남자들보다 계획적으로 지출을 관리할 테고, 이자를 제때 못내거나 돈을 떼먹는 일도 적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7천명의 주부들에게 4백억원을 빌려준 우먼프리론의 8월말 현재 연체율은 0.9%.시중은행들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대부분 1% 이상인 것과 비교하면 주부들이 아직까진 은행측의 믿음에 부응하고 있는 셈이다.

여성 고객에 대한 대접을 확실히 하는 금융기관이라면 역시 신용카드 회사들이다. 이 분야의 효시인 LG카드를 비롯해 카드사마다 경쟁적으로 여성 전용카드를 내놓고 있다. 백화점·할인점 등에서의 무이자 할부구매, 사고에 대비한 얼굴 성형보험 가입, 놀이공원·미용실·극장 등 여자들이 많이 갈 만한 곳에서의 요금할인 서비스는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놀이공원에 돈 내고 들어가거나, 영화를 제값 다 주고 본다든가 퍼머를 돈 다 내고 한다면 시대에 한참 뒤진 사람으로 취급될 판이다.

가장 최근에 현대카드가 내놓은 여성 전용카드의 서비스 내용를 보면 달라진 세태가 실감난다. 밤늦게 귀가하는 여자들이 서울모범콜택시를 타면 각종 사고를 보상하는 보험에 들어준다든지, 카드를 많이 쓰면 집으로 생리대 18∼40개를 보내준다든지 여성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카드사들이 여성 고객의 환심을 사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유는 은행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의 달라진 경제적 위상 때문이다. "현금서비스 비중을 낮추라는데 그러려면 일시구매·할부구매 등 다른 쪽 매출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죠. 앞으로 카드를 많이 써줄 고객은 바로 여성들이니 죽기 살기로 매달릴 수밖에요." 카드사 관계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실제로 전체 카드 이용액 중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43.0%에서 올해 9월 말엔 46.8%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비씨카드의 개인회원 현황 분석).

최근 자동차보험에도 여성 특화 상품이 등장하는 등 금융기관의 여성 우대 경향은 확산되고 있다. 일본계 고리대금업체 중엔 아예 여성이 아닌 남성에겐 돈을 빌려주지 않는 곳도 있다. 급전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연 98%대의 금리로 신용대출을 해주는 해피레이디 관계자는 "굳이 돈을 쓰길 원하는 남성이 있다면 부인 이름으로 대신 대출을 받는 수밖에 없다"고 잘라말한다.

금융권의 여성전용, 여성우대 바람은 여자를 존경해서라기보다 돈줄을 쥔 여자들이 늘며 등장한 상술(商術)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자가 돈이 된다고 믿는 세상, 그래서 달라진 대접은 유쾌한 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글=신예리 기자 shiny@joongang.co.kr

사진=주기중·그래픽=김주원 기자

여성전용, 여성우대 상품이라고 다 좋기만 할까. 허울에 속지 말고 실속을 챙기자.

★신용카드의 연회비를 뽑아낼 수 있는지 살피자

여성카드들의 연회비는 별다른 부가서비스가 없는 일반 카드(2천∼3천원)에 비해 많게는 1만원 이상 비싸다. 자신의 생활을 찬찬히 살펴서 그 이상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경우에만 만드는 게 현명하다. 주부 박미정(34·서울 서초구)씨는 마침 평소 잘 가는 S미용실에서 10% 할인해주는 여성카드를 만든 뒤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최소한 서너달에 한번은 퍼머를 하기 때문이다. 朴씨처럼 자신이 자주 이용하는 업체들을 제휴업체로 많이 확보한 카드를 만드는 게 좋다.

★담보대출의 금리는 더 싸다

은행·카드·대금업체 등 여성에게도 신용대출을 해주는 곳이 많아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내 집'이 있는 가정이라면 남편 모르게 쓸 일이 아닌 바에야 다른 어떤 종류의 대출보다 담보대출 금리가 훨씬 싸다는 점을 잊지 말자.

★연체하지 맙시다

카드든 은행이든 금융거래를 튼 여성들은 될수록 연체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서로에게 좋다. 그래야 금융권에서 여성 일반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 우먼프리론을 내놓은 국민은행은 주부들의 연체율이 더 낮아진다면 금리를 지금보다 더 낮출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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