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납북 日人 5명 영구 귀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도쿄=오대영 특파원] 북한에 납치됐다가 생존한 일본인 다섯명과 가족들이 이르면 다음달 일본으로 영구 귀국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과 북한은 다섯명과 가족들이 일본으로 영구 귀국한다는 데 합의했으며, 이르면 다음달 실현되는 방향으로 협의하고 있다.

요미우리(讀買)신문은 한 외무성 관리가 21일 "영구 귀국은 북·일 정부의 교섭보다 본인 의사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정부 간 합의는 돼 있다는 얘기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도 이날 "영구 귀국은 가족의 희망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북한 측도 이미 피랍자들에게 영구 귀국이 가능하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존자 다섯명은 지난 15일 가족을 북한에 둔 채 일본을 일시 방문했으며, 27일 북한에 돌아갈 예정이다. 북한 측은 이들이 북한을 떠나기 직전 한 피랍 일본인에게 "'이제 필요없으니 가족들과 함께 일본에 돌아가라"고 말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선 납치 문제를 서둘러 봉합하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 국적인 다섯명의 영구 귀국 준비도 마무리 단계다. 일본 여권을 취득해 사실상 일본 국적을 회복했고, 부부 두쌍은 일본 정부에 혼인신고도 했다. 일본 정부는 오는 29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에서 피랍자 가족들의 영구 귀국에 최종 합의할 방침이다. 다섯명의 북한 내 가족들에 대해선 정부가 취업·교육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현재 영구 귀국의 최대 걸림돌은 가족 문제다. 피랍자인 두 부부는 각각 2남1녀, 1남의 자녀를 두고 있다. 한 여성(소가 히토미)은 월북한 전 미군 병사(62)와 결혼해 2녀를 낳았다. 자녀 여섯명 가운데 중학생 한명을 빼고는 모두 대학생이다.

피랍자들은 일본의 가족들에게 "북한에서 자라고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아이들이 일본 생활에 잘 적응할지가 가장 큰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들 중 일부는 자녀에게 자신들이 납치된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으며, 이번에 일본에 올 때도 자녀들이 충격을 받을까봐 "여행간다"고 둘러댔다.

소가의 남편인 전 미군 병사는 지난 15일 피랍자 다섯명을 데리러 온 일본 관리에게 "현재 상황에선 일본을 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북한을 떠날 의사가 없음을 비치기도 했다. 소가도 20일 친구들에게 "납치됐을 때는 눈물로 지새웠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산다"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심정을 드러냈다.

일본 정부의 집요한 노력으로 다섯명의 영구 귀국 길은 열렸지만 실현 여부는 평양에 남은 혈육들의 의사에 적지않게 영향받을 것으로 보인다.

dayyo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