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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110년 역사 애관극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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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관극장(愛館劇場). 1960~80년대를 인천에서 보낸 이들에겐 추억의 이름이다. 서울 충무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따끈따끈한 최신 영화만 틀어주던 곳. 여기서 서부영화를 보며 환호하던 아이들은 '할리우드 키즈'로 자랐고, '러브 스토리'를 보며 슬그머니 손을 포개던 연인들은 어느덧 중년 부부가 됐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 '시네마 천국'에 나오는 파라디소 극장의 딱 한국판인 셈이다. 그런데 이 애관극장엔 파라디소 극장에도 없는, 향수 이상의 것이 있다. 바로 역사다.

애관극장의 역사는 무려 1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5년에 세워진 협률사가 1910년대 축항사를 거쳐 20년대부터 애관으로 불렸다. 바로 이 협률사가 우리 나라 최초의 극장. 고등학교 문학사 시간에 죽어라 외워야 하는 최초의 국립극장 원각사보다 무려 13년, 그 전신인 서울 정동에 있던 협률사보다도 7년이나 앞서 세워졌다. 구체적인 사료가 없어 정사(正史)에선 인정받지 못하지만, 시사(市史)엔 인천 협률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또렷이 남아 있다.

최초의 극장답게 애관극장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현재 행정구역상 위치는 인천 중구 경동, 옛 이름은 싸리고개다. 협률사의 원래 터도 이 부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국이라는 갑부가 단층창고에서 시작한 협률사는 남사당패 땅재주 등을 올렸는데, 인기가 제법 좋았던 모양이다. 축항사로, 또 애관으로 이름이 바뀌는 동안 번듯한 2층 벽돌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건물은 한국전쟁 중에 화재로 사라지고 말았다.

명맥이 끊어질 뻔했던 애관이 재건된 것은 1960년. 이때 애관 뒤에 극장이란 두 글자가 붙었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400석의 좌석과 영화와 악극을 함께 올릴 수 있는 무대를 갖추었다. 연 관람객이 수십만명에 달했고, 이미자.나훈아 같은 가수들의 '리사이틀'이 열리는 날이면 너무 많은 인파에 관객들이 떠밀리면서 병원에 실려가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까지도 식지 않던 애관의 명성은 멀티플렉스 상영관들의 등장과 함께 조금씩 대중에게서 멀어져 갔다.

애관극장의 지금 주인은 탁경란(41.사진) 사장. 전후 애관극장을 재건한 이봉열씨에게 72년 극장을 인수한 탁상덕(91년 별세)씨의 막내딸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내리막길을 걷다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아 경매판을 떠돌던 극장을 2000년 사들였다. 그리고 지난해엔 4개 상영관을 더 지어 극장을 멀티플렉스로 확장했다. 경쟁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선 새로운 조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법. 그러나 모든 것을 바꿔도 바꾸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바로 애관극장이라는 이름이다.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최초 극장이라는 자존심을 저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름이 촌스럽다는 소리를 얼마나 들었는지 몰라요. 그래도 '시네○○'만 넘쳐나는 세상에 '애관'이 오히려 정감있게 느껴지지 않나요?"

글=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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