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영화'싸인'의 미스터리 서클 꾸며낸 당사자에 의뢰해 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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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2면

전세계적으로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일 것이다.'스타워즈'와 'ET' 이후,할리우드 SF영화는 외계인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할리우드 영화는 지금 외계인의 침공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겠다는 미국인들로 득실거린다.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외계인이 등장하는 SF영화가 극장에 걸렸다.'맨 인 블랙2'와 '싸인'이 그것인데,볼거리가 풍성했던 '맨 인 블랙 2'는 우리나라에서 성공했지만,영화적으로 완성도가 더 높은 '싸인'은 그다지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식스 센스'의 감독 나이트 샤말란이 만든 '싸인'은 미스터리 서클을 소재로 만든 외계인 영화다.좀더 정확히 말하자면,마을에 출현한 외계인과 그들이 만든 미스터리 서클을 빌려 영적 깨달음과 운명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필라델피아의 어느 시골 옥수수밭. 불길한 예감에 잠을 깬 농부 그레이엄(멜 깁슨)은 자신의 밭 한가운데 거대한 기호가 아로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 기호가 그레이엄의 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자 사람들은 공포에 떤다.

이렇게 들판 한가운데 원형 또는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농작물이 눌려져 있는 것을 '크롭 서클'(Crop Circle)이라고 하는데, 흔히 미스터리 서클이라고 더 잘 알려져 있다.크롭 서클이 공식적인 매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 영국 윌트셔의 한 지방신문에서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미 70년대에 발견은 시작됐다. 영화와 달리 서클은 주로 영국에 집중돼 있고,영화에서처럼 옥수수밭이 아닌 밀밭이나 보리밭에서 주로 나타난다.샤말란 감독이 굳이 옥수수밭을 택한 까닭은 옥수수의 키가 커서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공포감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동안 사람들은 크롭 서클을 외계인으로부터의 메시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농작물이 누워있는 것으로 보아 강력한 자기력이나 전자파·플라스마 와류 등 첨단 기술을 이용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91년 더그 바우어즈와 데이비드 촐리가 크롭 서클은 자신들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널빤지·밧줄·야구모자 등을 이용해 그 자리에서 만들어 보이자,사건은 한 순간에 종결돼 버렸다. 헝가리에선 전문가도 구별하지 못할 가짜 크롭 서클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에는 크롭 서클이 외계인의 메시지로 등장한다. 영화를 자문해 준 콜린 앤드루스가 미스터리 서클을 외계인의 존재로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부분의 크롭 서클이 가짜인 것은 인정하지만, 20% 정도는 아직 설명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영화에 등장하는 크롭 서클들은 특수효과가 아니라 바우어즈와 촐리가 만든 방법을 이용해 실제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영화가 사실적일수록 미스터리 서클은 가짜가 돼버리는 것이다.

jsjeong@complex.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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