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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당국, 독감 백신 권장 지나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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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국민건강 관리는 국민 각 개인의 건강을 집단적으로 국가가 관리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그 어떠한 편견이나 불평등이나 부조리란 있을 수 없다. 현대 국가에서 국민 개인의 건강문제는 비록 그것이 개인의 것이라도 공익성을 갖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더라도 국가가 개입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그런데 현대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의학기술이 고도로 전문화되다 보니 일반인들로서는 도저히 접근조차 불가능하게 돼 특정인들에게 독점됨으로써 독선과 아집을 넘어 때로는 상업화되는 경향마저 있다.

오늘날의 국민보건은 병든 사람의 진료는 물론이고 건강한 사람의 장래에 닥쳐올지 모르는 질병 예방에까지 힘을 쓰고 있다.

백신은 의학 사상 최고의 발견이며 발명이지만 이러한 위대한 과학의 산물도 사용 의도가 건전치 못하거나 서투르게 사용하면 폐해가 막심한 것이다. 지난날 암담한 시절의 사건은 접어두고라도 작년에는 모든 국민이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공포에 질려 있는 가운데 질병관리본부가 인플루엔자의 세계적 유행이 우려된다며 사스와 인플루엔자는 임상적으로 구분이 안 되니 의사가 진료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인플루엔자 예방 접종을 해야 한다고 국민을 마구 밀어붙이더니 올해도 또다시 국민에게 조류 인플루엔자 예방 접종을 지나치게 권장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접종하고 있는 백신으로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예방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관리본부가 인플루엔자 백신을 대량 확보한 후 국민의 3분의 1을 목표로 접종을 하고 있는데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일은 찾아볼 수 없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사람에게 감염됐던 것은 아마도 우연한 사고일 개연성이 크다. 이제까지 감염된 사람이 다른 건강한 사람에게 전파시킨 예가 없고 어느 곳에서도 넓은 지역으로 확산된 일도 없으며 오로지 제한된 일부 지역에서만 수십명의 환자가 보고된 것으로 보아서 아직은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는 아닌 것 같다.

질병관리본부의 지나친 인플루엔자 백신 권장은 필연적으로 병.의원이나 백신 공급 업체의 호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들은 감사할지 모르나 많은 국민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 이런 모습이 참된 국민건강 관리는 아닐 것이다. 예방접종 대금은 백신을 벌크 상태로 수입해 국내 제약사가 작은 단위로 포장한 것을 접종하면 불과 수천원인데, 외국에서 외국제약사가 소분 포장한 것을 수입해 접종하면 수만원을 받는다. 그래도 많은 국민이 외국에서 소분 포장한 고가의 백신을 선호해 이미 동이 났고 국내 약품업체가 소분 포장한 백신은 물량이 남아서 보건소에서 무료접종 받으라고 한다니 이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한때 백신의 제조.검증.적용 등에서 현장을 지켜본 필자로서는 감회가 깊다. 백신의 오.남용, 국민에게 불안 조성, 제약업체의 백신 생산 기술 부재 등이 질병관리본부가 깊이 반성하고 올해부터 철저히 시정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김주성 전 국립보건원 호흡기바이러스 과장.WHO협력한국실험실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