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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던함 속에 깃든 한국적 미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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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도천(陶泉) 도상봉(1902∼77)은 서양화 1세대 가운데 과소 평가된 화가 중 한 사람이다. 1927년에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귀국한 뒤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50년에 걸친 화력에 큰 변화 없는 단정한 작품 세계를 유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전주의와 아카데미즘을 한국 화단에 정착시키기 위한 그 노력은 단아한 형태 묘사와 안정감 있는 구도로 나타났는데, 그 무던한 정물화와 풍경화 속에 깃든 한국미가 평단의 뒤늦은 주목을 받고 있다.

12월 8일까지 서울 정동 덕수궁미술관(관장 최은주)에서 열리고 있는 '균형과 조화의 미학-도천 도상봉 탄신 100주년 기념전'은 그 재평가를 가능케 하는 자리다. 초년인 30년대부터 말년인 70년대까지 한치 흐트러짐 없는 도천의 올곧은 작풍이 70여 점의 정물·풍경·인물화로 선보이고 있다.

'도자의 샘'이란 호 그대로, 도천은 조선시대 백자를 중심 소재로 고요하고 맑은 정물의 세계 속에서 한국적 사실주의를 찾았다. '조선백자'가 대표하는 우리 정서를 서양화 기법으로 풀어내면서, 아울러 은은하게 번져가는 동양화의 수묵화 기법을 더해 나름의 한국미를 완성했다. 목기와 어우러진 백자, 안개꽃이나 라일락이 소담하게 담긴 백자, 사과나 배 몇 알과 나란한 백자 그림은 도천이 이루려고 했던 고고한 형태미의 분신들처럼 보인다. 정갈하면서도 엄정한 그 정물화들에서는 때로 폴 세잔이 사과와 산에서 추구했던 '사물의 구조'가 겹치기도 한다.

도천을 재평가해야 할 또 한가지 점은 재료학에 대한 관심이다.

캔버스 처리를 잘 하고 좋은 물감을 쓴 결과,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균열이나 박락을 찾아볼 수 없다. 잔 붓질로 매끈하게 다듬은 완성도가 빼어나 방금 붓을 땐 듯 생생하다. 미술품 보존 전문가들이 도천을 재료를 인식하며 그림을 그린 화가로 첫 손 꼽는 까닭이다. 02-779-531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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