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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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고의 예술품"이라 극찬한 것은 바로 사람의 발이다. 그는 해부학적 지식에 근거해 발을 인체공학의 걸작으로 꼽았다. 발은 52개의 뼈와 76개의 관절에 64개의 근육으로 만들어진 정밀기계며, 인류의 오늘을 가능케 한 직립보행(Homo Erectus)의 버팀목이다. 발은 보통 하루에 6백50t, 한평생 지구를 네바퀴 돌며 약 2천만t의 무게를 지탱해야 한다.

마라톤 선수에게 발은 더욱 소중하다. 걸을 때 땅에 닿는 발은 몸무게의 1백20%를 버텨내야 하며, 뛸 때는 몸무게의 3배를 받쳐줘야 한다. 마라토너는 한번 출전을 위한 연습과정에서 보통 1천5백km를 달린다. 대략 서울∼부산을 두 번 왕복하는 거리다.

그런데 아시안게임의 피날레를 장식한 마라토너 이봉주(32)선수는 발에 문제가 있다. 심각하진 않지만 발의 크기가 맞지 않는 짝발에다 발바닥이 평평한 평발이다. 그에게 자신의 결함을 보완해주는 신발 '소르티-리(Sortie-Lee)'가 더더욱 중요한 까닭이다.

'소르티-리'는 후원업체인 아식스사(社)가 만든 '이봉주 전용 신발'이다. '소르티'란 아식스사의 마라톤 전문화 이름인데, '가까운 여행' '비행기의 출격' '새로운 시도'란 뜻. '리'는 이봉주의 성(姓). 일본의 신발박사 미무라 히토시(三村仁司)가 7천만원을 들여 개발했다.

우선 가볍다. 이전까지 신던 신발 한짝의 무게 1백65g에서 20g 더 줄여 1백45g으로 만들었다. 밑창을 EVA 스펀지 3겹으로 만들어 얇고 가벼우면서도 충격은 최소화했다. 신발 바깥쪽은 바람이 잘 통하는 특수 폴리에스테르인 러셀매치를 사용하고, 안쪽은 냉담 폴리에스테르를 붙여 맨발에 가까운 쾌적함을 추구했다고 한다. 이봉주 선수 스스로 신발을 우승요인으로 꼽을 만하다.

그러나 스포츠 과학의 개가(凱歌)만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마라톤의 승부다. '마라톤은 장거리의 연장이 아니다' '단거리는 소질이고, 장거리는 노력'이라고 한다. 이봉주는 1990년 이후 28번째 풀코스를 완주했다. 동갑내기 황영조는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을 정점으로 모두 8번의 화려한 역주를 마감한 지 오래다. 후배들도 벌써 쇠퇴기로 접어들어 뒤처지기 시작했다.

이봉주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뛰겠다고 한다. 2천5백년전 그리스 군인 필리피데스처럼 마라톤 평원을 달리고 싶단다. 봉달이에게 갈채를!(봉달이는 '봉주-봉지-봉다리-봉달이'로 변해온 별명.)

오병상 대중문화팀장

ob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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