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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까다로운 대학병원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65면

우리 나라에서는 동네 의원에서 치료가 어렵다는 말을 조금만 들으면 곧바로 대학병원을 찾는다.

환자들은 1~3차 의료기관 간 의료 수가(酬價)차이도 걸림돌로 생각하지 않는다. 제도가 이러니 대학병원 명의의 진료실은 늘 만원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의료보험 환자는 의료 전달 체계의 순서를 철저히 밟아야 큰 병원 진료가 가능하다.따라서 1차 의료기관인 동네의원에서 3차인 대학병원 치료를 받는 데까지는 갈 길이 멀고 복잡하다.

1차 진료의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환자는 더 큰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 이 때 의료보험회사의 허락이 필요하다. 치료도 보험 혜택 정도를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

물론 일반 수가를 내면 진료기간이 단축되나 건강보험 카드를 묻어두고 엄청난 돈을 내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렇게 해서 큰 병원 치료를 받았더라도 치료가 끝나면 1차 병원 의사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 친인척이 있는 재미 동포 중에는 미국에서 진단을 받고나서 치료는 한국에서 하는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본다.

치료 시기를 조정할 수 있는 성형외과·피부과·안과 등은 물론 내과나 산부인과 질병을 가진 사람도 한국을 찾는다.

예약을 하면 치료 과정이 짧은데다 의료비가 미국보다 싸고 한국 명의들의 치료 실력이 괜찮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나라 유명 병원은 불임·암 수술·장기(臟器)이식 등 어려운 수술 치료 성적도 미국의 웬만한 병원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물론 기초의학 연구분야, 막 도입된 신치료 기술, 임상실험 등의 분야는 미국이 한참 앞서가지만 대부분의 환자 치료와는 무관하다.

또한 우리 나라는 유행처럼 치료를 받는 경우도 많아 의사들이 단시간에 많은 환자를 경험한다.

예컨대 근시 수술만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보통 한 의사가 1주일에 한두 명 환자를 치료한다고 한다. 미용 성형수술을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료실에 환자가 있는 일은 미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미국 의료보험이 있지만 여름 휴가 때 국내 S대학병원에서 일반 수가로 본인의 부인과 치료와 남편의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는 재미동포 P씨(57·여). "큰 병원에서 2주일 안에 모든 기본 치료가 끝나 놀랍다"며 "다음에도 응급 상황이 아니면 한국에 와서 치료를 받겠다"고 밝힌다.

우리 나라도 의료제도만 합리적으로 개선되면 치료차 미국 가는 유명 인사를 부러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웬만한 치료의 질이 미국과 차이가 없어 미국행의 경제성이 의문시되는 경우가 적지않은 것 같다.

황세희 전문기자·의사

s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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