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I, 언론관계법 관련 청와대 항의서한 번역본 전문

중앙일보

입력

<서한 전문> 비엔나, 2005년 1월 11일

노무현 대통령 귀하

저희 국제언론인협회(IPI)는 지난 1월 1일 국회를 통과한 언론 관련 2개의 수정안('신문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매우 우려돼 대통령께 이 서한을 전달해 드립니다.

IPI는 만약 법안들이 실제로 공포된다면 한국의 언론 자유 및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위상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합니다.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 17조는 1개 신문사의 시장 점유율이 전국 발행부수의 100분의 30 이상이거나 3개 이하 신문사의 시장 점유율 합계가 100분의 60이상인 경우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은 공정거래법에서 일반 기업들에 대해 규정한 시정 점유율 기준(1개사 50%, 3개사 75%)보다 낮춘 것으로, 경제 활동 상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비판받고 있습니다.

방송사들의 시장 점유율에 대해 우려하거나 신문-방송의 교차 소유를 제한하는 것은 적절한 조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문사의 시장 점유율을 제한하는 것은 이례적일 뿐 아니라 정통적이지도 않습니다. 영상이 주는 강력한 메시지와 TV광고의 영향력 때문에 방송사들에 대한 시장 점유율은 언제나 우려의 대상이나, 신문의 시장 점유율 제한 조치는 전통적으로 고려 대상에서 제외됐었습니다.

결국 이 법안은 주요 신문에 대한 독자의 읽을 권리를 제한하며, 결과적으로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들을 압박하려는 시도로 보여집니다.

이에 따라 신문사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부당하게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벌금액이 매출의 3%까지 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으므로, 정치적 의도로 신문사를 파산시킬 위험성도 크다고 우려됩니다.

이 법안은 8조에서 독자가 편집 또는 제작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으며, 10조에선 독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독자 권익의 보호를 위한 회의를 개최하여 이를 지면에 반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물론 상위 조항들은 신문사가 자발적으로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여전히 문제가 있는 조항이라고 IPI는 판단합니다. 이 조항이 포함된 자체가 명백한 정치적 압박일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편집자, 기자, 발행인들이 외부의 간섭없이 자신들의 견해를 표명할 권리를 침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문사의 기사 및 사설은 독자가 아닌 신문사 내부에서 결정할 문제이며, 독자는 최종 산출물에 대해 자유롭게 구독 여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법안은 37조에서 국민의 폭넓은 언론매체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신문유통원을 설립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이 조항은 자체적으로 막연할 뿐 아니라 신문유통원이 태생적으로 정치적이고 편파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문발전위원회, 신문발전기금을 포함해 이러한 신설 기구들이 이해 상충없이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정부의 간섭에서 배제돼야 합니다. 수정안에는 정부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장치가 없으며, 이에 따라 신설 기구가 정부에 회의적인 언론을 지원하는데 쓰일 것에 대해 IPI는 우려하는 바입니다.

또한 정부가 공동배달 시스템을 지원하는 것은 과거 공산주의 시절의 동유럽 국가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공동 배달 시스템은 '일부' 신문들을 살리고 다른 신문들은 폐간시키기 위해 사용됐었습니다.

IPI는 이 조항이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정신도 위배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마지막으로 13조에서 발행인 결격 사유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아 집행이 종료된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자 뿐 아니라 집행유예 기간에 있는 자까지 포함시킨 것은 지난 2001년 정치적 목적으로 실시됐던 언론 세무조사로 인해 형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추가적으로 벌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은 언론중재위원회가 피해 당사자 뿐 아니라 제 3자도 국가적 법익이나 사회적 법익 또는 타인의 법익 침해 사항 등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도 내용에 대한 시정 권고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제3자가 중재에 포함되도록 한 것은 본질적으로 비민주주의적인 규정입니다. 만약 시민단체 등의 제 3자가 언론중재위원회에 시정 권고를 신청할 수 있다면 신청 건수가 급증할 수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언론 활동을 부당하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언론중재위원회가 국가적 법익을 판단하고 심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판단은 곧잘 정치적 관계, 학계, 언론, 노사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주관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가 '국익'에 대해 자체적으로 판단할 권한이 주어진다면 '언론 통제 기구'가 될 우려가 높습니다.

또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이나 중재 절차에 의해서도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재판관들의 권한을 심각하게 침해할 경우 위헌의 소지가 있습니다.

각 언론사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 이런 규정을 강제화하고 최고 3000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형사 처벌에 가까울 정도로 과도하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결론적으로 IPI의 검토 결과 두 개의 법안 모두 한국의 헌법과 국제 기준의 언론 자유에 배치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IPI로서는 이 법안들의 실제 의도가 언론을 조종하려는 목적이 아닌가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IPI는 대통령께서 국회를 통과한 상위 두 법안들에 대해 거부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관심을 갖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한 프리츠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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