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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불교문화 상징 신라 혜초스님 방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범연나국(梵衍那國·바미안국)은 설산(雪山)한가운데 있다. 왕성의 동북쪽 산 언덕에 있는 입불(入佛)의 석상은 높이가 1백40-1백50척에 이르는데 금빛이 나며, 보석 장식이 반짝이고 있다."

당나라 때인 625∼645년 바미안국을 포함해 인도 등 1백10여개 나라를 둘러 본 현장 스님이 남긴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중 바미안과 석불을 서술한 대목이다.

이미 7세기에 바미안 석불이 서남아에서 융성했던 불교문화의 상징으로 통했다는 의미다. 바미안에 석불이 조성된 것은 인도의 쿠샨왕조가 이 지역 일대를 통치하던 2~5세기로 추정된다.

신라의 혜초 스님도 727년 이곳을 방문했다. 당시 이 도시는 상업 요충지이자 불교 신앙의 중심지로 동서 문화가 교차하던 곳으로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았다.

거대한 사암 절벽에 대형 감실을 판 뒤 입상(立像)을 도드라지게 새겨 놓은 바미안 석불 양식은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은 얼굴 부분은 8세기 이후 이 지역이 이슬람권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면서 일찌감치 파괴됐다.

탈레반 최고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는 지난해 2월 26일 포고문을 통해 "이슬람 율법에 따라 반 이슬람적인 모든 불상을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3월 초 바미안 석불은 완전히 파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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