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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스티커 붙이고 다니며 홍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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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구암마을에서 밤나무집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윤태한(44·사진)씨도 1989년까지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이 마을의 다른 젊은이들처럼 학교를 졸업한 후 대구에서 직장을 잡고 전셋집에서 가정을 꾸렸다. 80년대 말 부동산 가격 폭등은 그로 하여금 다시 고향을 돌아보게 했다.

"자고 나면 집값이 5백만원, 1천만원씩 널뛰듯 하는 걸 보며 도시생활이 피곤해졌습니다."

출퇴근이 힘들긴 해도 일단 고향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행히 그에게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라 값은 안나가지만 물려받은 밤나무 숲과 논밭이 있었다.

"전세금 올려달라"는 소리 안 듣고 1년 가까이 시골생활을 해 보니 '뭔가 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이 보였다.

산이며 마당에 놓아 기르고 있던 고향집의 닭맛을 한번 본 도시인들이 꼬리를 물고 찾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접고 농촌체험형 농장 가꾸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농촌체험·팜스테이 등 개념조차 낯설었던 90년대 초였다. 먼저 2만여평의 밤나무 숲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차에 '밤나무 분양'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며 고객을 모았다.

윤씨는 "쉽지는 않았지만 한 그루에 3만원씩 1백여그루를 분양하는 데 성공하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고 했다. 이어 흑염소도 새끼 때부터 도시인들에게 분양한 뒤 대신 사육해주기 시작했다.

마리당 15만원씩에 분양받은 후 월 5천원씩의 사료값만 내면 다 자란 뒤 가져가는 것이다. 6백여평의 텃밭도 매년 봄 도시인들의 주말농장으로 분양하기 시작해 올해부터는 한 이동통신업체와 고객 사은 주말농장 계약을 하기도 했다.

농장에서 기르는 멧돼지·토종닭·꿩·청둥오리·흑염소는 부인 배영화(42)씨가 운영하는 밤나무집 식당에서 토속음식으로 대부분 팔려나간다. 주말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당나귀·거위·기러기·토끼의 우리도 만들었다.

1천5백그루의 밤나무 숲에서는 가을마다 알밤따기 행사(참가비 3천원)를 열고 있다. 올해도 지난 한달여 사이 6천여명이 다녀갔다.

"시골생활이 체질에 맞는 것 같다"는 그는 "요즘엔 마을 홈페이지(www.palgong.invil.org)를 보고 서울·부산 등지에서도 찾아온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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