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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兄虎弟 재계 'K'패밀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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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6면

2년 전 설립된 I투자신탁운용은 '우정의 산물'이다. 자본금 1백50억원 중 67%(1백억원)지분을 소유한 최대주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13%(20억원)를 가진 2대 주주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친분이 없었으면 설립되기 힘들었을 회사다.

鄭회장은 평소 금융분야에 관심이 많아 진출을 모색해왔던 터다. 그 일환으로 투신운용사를 설립하려 했지만 '1인 회사'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걸렸다. 그래서 李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두 사람은 고려대 경영학과 선후배 사이인데다 '재벌 2세'라는 동류의식으로 6살 차이에도 불구하고 절친한 사이. 또 李회장은 평소 후배를 잘 챙기는 것으로 정평난 사람이다. 李회장은 흔쾌히 승낙하고, 2대 주주로 참여했다.

두 사람 외에도 오너 2∼3세 중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이 상당히 많다. "재벌 2세는 고대 경영학과를 좋아한다"는 우스갯소리마저 있을 정도다. 본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구자훈 LG화재해상보험 회장 등 LG가(家) 4명, 정몽원 전 한라그룹 회장 등 현대가 4명 등 모두 20명이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과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손자인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 등 부도가 난 재벌 2세까지 합치면 30명에 가깝다. 고려대 물리학과 출신인 최태원(42) SK회장과 이홍순(42) 삼보컴퓨터 회장 등 타과 출신들까지 합치면 고려대 출신 2세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고대 경영학과는 국내의 대표적인 '반(反)재벌'교수들이 있는 곳이다. 오너의 승계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던 이필상 교수와 소액주주운동의 대부인 장하성 교수가 그들이다. 그러나 李교수는 "학과 출신 중 재벌2세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누가 2세인지 알지 못했고, 특별히 기억나는 2세들도 없다"고 말했다.

◇20여명이 고대 경영학과 출신 2세=고대 경영학과 출신이 많은 재벌은 LG와 현대가(家)다. LG는 창업주인 고 구인회씨 동생인 구철회씨의 3남 구자훈 LG화재해상보험 회장, 구평회씨의 장남 구자열 LG전선 부사장, 구정회씨의 5남 구자민 LG전자 상무, 구자경 LG명예회장의 2남이자 현 그룹 회장인 구본무씨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 4명이 고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구인회씨의 동생인 구두회 LG창업고문이 99년부터 고려대 교우회장을 맡는 등 고대와 인연이 많다. 具고문도 고대 경영학과의 전신인 상학과를 나왔고, 명예 경영학 박사도 받았다.

고 정주영 회장의 현대 가문도 고대와 인연이 많다. 鄭회장은 고향인 강원도 통천에서 가출, 서울 안암동의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신축 공사장에서 인부로 생활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동생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도 고려대 정외과 출신이며, 具고문에 앞서 최장수 고려대 교우회장(1993∼99)을 지내는 등 고대와 인연이 깊다.

정세영 회장의 외아들인 정몽규 산업개발회장도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그는 두산그룹의 4세인 박정원 두산 사장과 대학 동기다. 정인영씨의 차남 정몽원 전 한라그룹 회장, 정상영씨의 장남 정몽진 금강고려화학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외아들로 현대가 3세인 정의선 현대차 전무 등도 고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고대 경영학과 출신 오너 2∼3세 중 맏형 역할을 하는 사람은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데다 모임을 엮어가는 사교성이 뛰어나다. 오너들의 모임인 전경련 부회장으로 있는데다 올해 마흔다섯으로 30∼40대 초반의 2∼3세들 중 연장자인 때문에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같은 학과 출신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고대 물리학과 출신인 최태원 SK 회장 및 이홍순 삼보컴퓨터 부회장 등과 친해 '고대 4인방'으로 불린다.

지금은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도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李회장에 앞서 고대 출신 2세 모임을 주도했다. 현재 고려대 교우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진 조중훈 회장의 2남이자, 현재 그룹 회장인 조양호씨의 동생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부회장도 고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그는 고대 출신 2세들이 주축인 크림슨 포럼(crimson forum)의 회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 출신 2세는 "이 포럼은 고대 개교 1백주년인 2005년의 행사를 대비해 90년대 중반 설립됐다"고 밝혔다.

두산그룹 회장을 지냈던 박용곤 두산건설 회장의 장남이자 국내 유일의 '4세 최고경영자'인 박정원 두산 사장, 이웅열 회장과 더불어 전경련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윤 삼양사 부회장, 선대(先代)에 이어 그룹을 공동 경영하는 이만득·유상덕 삼천리그룹 공동회장 등도 고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재벌 2세들 중에도 고대 경영학과 출신이 많다.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동생인 김석준 전 쌍용회장, 김현철 전 삼미그룹 회장의 동생인 김현배 전 삼미 회장, 고 김형종 한신공영 창업주의 장남인 김태형 전 한신공영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손자인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도 고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우정도 키우고 사업도 같이=고대 경영학과 출신 오너 2세끼리 별도로 모이는 공식적인 모임은 없다. 고대 경영대학 교우회와 고대 경제인회 등이 있지만 2세만의 모임은 아니다.크림슨 포럼 역시 2세들이 주축이지만,다른 인사들도 있다. 그러나 사적인 모임은 대단히 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웅열 코오롱 회장 등 '고대 4인방'의 친분이 대단하다. 李회장과 정몽규 회장은 대학 선후배, 李회장과 최태원 SK회장·이홍순 삼보컴퓨터 부회장은 대학 및 고등학교(신일고)선후배로 얽혀 있다.

대기업과 벤처기업 간 협력을 중개하는 브이 소사이어티는 '신일고-고려대'의 산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주축이 됐고,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김준(김각중 전경련 회장의 장남)경방 전무·정용진(이병철 창업주의 외손자) 신세계 부사장·조동만(이병철 창업주의 외손자) 한솔 부회장·신동빈(신격호 회장의 2남) 롯데 부회장 등 2세들이 브이 소아이어티의 핵심 멤버들이다. 이를 통해 벤처기업에 공동 투자도 많이 했다고 한다. 기업 간 전자상거래(B2B)네트워크인 아시아 비투비 벤처스와 소모성 자재의 B2B 회사인 코리아e플랫폼도 '고대 4인방'주도로 설립됐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손인 이재현(42) 제일제당 회장도 고려대 법학과 출신으로 4인방과 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면 공식 호칭을 부르지 않고, 서로 형·동생으로 통할 정도다.

김영욱·김태진 기자

young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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