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성 없는 사업 '주먹구구 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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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방자치단체가 출자한 제3섹터 법인은 한마디로 부실 덩어리였다. 지방재정 확충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시작한 일이 오히려 지자체에 부담만 주고 있는 것이다. 감사원은 급기야 부실화한 제3섹터를 정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 부실 백화점 된 제3섹터=민간에 비해 경쟁력이 없는 사업에 진출했다 낭패를 본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인천에서 출자한 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는 유원지 사업을 하기 위해 설립했다. 그러나 인천에는 이미 송도유원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인천에서 멀지 않은 수원.용인에는 에버랜드.민속촌 등 대형 유원지가 버티고 있었다. 이 회사는 결국 유원지 사업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적자만 키웠다.

이밖에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음반 판매 등 민간기업 간에도 경쟁이 극심한 분야에 뛰어들었다가 부실해진 법인이 11개나 됐다. 안산시가 출자한 도시개발주식회사는 자본금은 50억원인데 차입금은 무려 1000억원(2003년 말)이나 됐다. 한해 이자 부담만 50억원에 달해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했다.

경험이 없는 공무원 출신 경영진이 회사 부실을 키운 경우도 있다. 대구시가 출자한 복합화물터미널은 시 고위공무원 출신이 대표를 맡았으나 매출실적이 거의 없어 곧 청산할 예정이다. 감사원은 역대 제3섹터 법인 대표이사 98명 가운데 24명이 회사운영 경험이 전혀 없는 공무원 출신이었다고 밝혔다.

광명시는 음반유통회사에 출자했으나 MP3 시장 확대 등으로 음반시장이 축소되자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감사원 관계자는 "시장축소도 문제지만 애초에 시장 예측과 업종 선정을 잘못했다"고 지적했다. 제주도가 출자한 한 회사는 매출액을 첫 해에 43억원, 둘째 해에 92억원으로 예측했으나 실제로 1억원과 4억원에 불과했다. 당초 목적과는 다른 엉뚱한 사업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부산시는 태종대 유람선 사업을 하기 위해 한 법인에 출자했다가 실패하자 1999년 아시안게임 골프경기장 사업자로 선정돼 업종을 아예 바꾸기도 했다.

◆ 경영평가 도입 시급=제3섹터 법인에 대한 경영평가.진단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제3섹터 법인은 지자체의 출자지분율이 50% 미만이라는 이유로 50% 이상인 공기업에 적용되는 경영평가.진단제도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또 사업전망이나 목적 등 설립 타당성이 없는 법인의 무분별한 설립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당초 제3섹터 법인의 사업범위는 '민간인의 경영참여가 어려운 사업'이었다. 그러나 지자체들은 대부분 민간기업과 경쟁하는 분야에 뛰어들었다. 제주도의 경우 제주도가 출자한 14개 법인 중 11개가 민간과 경쟁이 치열한 분야였다. 감사원은 "지자체의 경영참여 기준을 마련하고 주주권, 회계 감사권 등 관련 권리의 적극적 행사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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