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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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오는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상연하는 베르디의'오텔로'는 그런 이유에서 대개 스탠더드 레퍼토리로 분류되지 않는다. 오페라의 거장 베르디가 음악화한 셰익스피어라는 점에서 흥미를 끌지 모르지만, 치밀한 연출과 연기가 펼쳐지지 않는 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가 힘들다. 노래의 연결로 끝나는 평범한 작품이 아니다. 유럽 무대에서 오텔로 역으로 성가를 높여온 테너 김남두 같은 훌륭한 성악가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국내에서 이 작품을 제작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예술의전당이 '피가로의 결혼'에 이어 자체 기획으로 올린 두번째 오페라다.하지만 올해 상반기에 베를린 도이체 오퍼의'피가로의 결혼'과 마찬가지로 외제 수입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피가로의 결혼'이 무대·의상은 물론 주역가수·합창단·오케스트라 등 출연진 전체를 패키지로 전량 수입한 것이라면,'오텔로'는 국내 출연진에다 15년전 영국 로열오페라극장이 만든 무대와 의상만 빌려왔다.

오페라 선진국의 프로덕션 전체를 수입, 국내 무대에 소개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 국내 음악팬과 스태프들의 안목을 업그레이드하는 측면에서 그렇다. 하지만 외국 극장과의'합작'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와 의상만 빌려 오는 것은 민간 오페라단이라면 몰라도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 극장에서 앞장서서 할 일은 아니다. 극장이 장기적으로 국내 오페라계 발전을 위해 뭔가 이바지하려면 제작 시스템도 모범적이어야 한다.

지난 7일 열린 무대 리허설을 보고 난 소감을 말하자면 한마디로 '오텔로'는 자주 상연되지 않는 레퍼토리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빌려온 무대와 의상에 압도돼 노래나 연기가 빛바랜 느낌을 주었다. 동선(動線)을 따라가는 데 급급할 뿐 음모와 배신, 의심과 절망으로 점철된 등장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전면에 부각하는 데 미흡했다. 관객의 눈길을 끄는 무대와 의상의 중량감에 비해 연출과 연기는 평범했다. 대포를 앞세운 1막의 군중 장면의 화려함과 주역들의 갈등 묘사의 극적인 대비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주인공 오텔로 역의 테너 김남두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의 무게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따뜻하고 유연한 목소리에 다소 비극적인 암울함을 내비치는 데 성공한 소프라노 조경화(데스데모나 역)도 적절한 캐스팅이었다. 하지만 신예 테너 이동현(오텔로 역)은 타고난 미성과 카리스마에도 불구하고 오텔로 역에는 맞지 않는 목소리였다.'라보엠'의 로돌포 역이 적합할 것 같다. 바리톤 우주호(이아고 역)는 탄탄한 기본기와 성량으로 무대를 이끌었으나 비극적 종말을 재촉하는 음모의 주모자다운 목소리 연기와 심리 묘사가 아쉬웠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lully@joongang.co.kr

극장 문을 나설 때 절로 입가에 맴도는 아리아는 오페라의 꽃이다. 하지만 주역 가수가 부르는 아리아 몇 곡이나 '사랑의 2중창'을 듣기 위해 베르디의 '오텔로'를 선택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전편에 걸쳐 음악과 드라마가 한데 뒤섞여 있어, 소용돌이치듯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사건의 실타래를 쫓아가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오페라 '오텔로'= 베르디가 73세 되던 해인 1887년에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아이다' 이후 16년 만에 착수한 오페라다. 작곡가 출신의 대본 작가 아리고 보이토가 대본을 썼다. 유색인종으로 사이프러스 총독의 자리에 오른 오텔로가 겪는 사회적 갈등과 함께 등장 인물의 본능과 내면세계를 처절할 정도로 치밀하게 묘사한다. 4막에서 데스데모나가 자신의 운명을 예고하기라도 하듯 연인에게 버림받는 소녀의 얘기를 회상하는'버드나무의 노래', 남편 오텔로에게 목이 졸려 죽기 직전 성모 마리아의 초상화 앞에서 부르는 '아베 마리아'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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