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개발모델로 삼은 중국 경제특구 어떤 성과 냈나요 개혁·개방 신뢰 높이고 수출산업 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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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북한이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을 본떠 신의주를 특별행정구로 지정해 전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어요. 더욱이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된 네덜란드 국적의 중국인 양빈(楊斌)이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연금돼 더욱 화제의 뉴스가 되고 있어요. 북한의 신의주 특구 지정을 계기로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개발 모델이 된 중국 특구의 실험이 과연 얼마나 성과를 거뒀는지 살펴보기로 해요.

1.중국은 왜 경제특구를 만들었나요. 경제개발을 하려면 특정 지역보다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골고루 산업을 발전시켜야 하지 않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중국은 1949년 공산정권을 수립한 후 마오쩌둥(毛澤東)이 주창한 '자력갱생'의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폐쇄 경제체제를 유지했어요. 여기엔 미국의 중국 봉쇄전략도 한몫을 했고요. 그 결과 중국은 절대빈곤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덩샤오핑(鄧小平)은 권력을 잡은 직후인 78년 12월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개혁·개방 노선을 정식으로 채택합니다.

하지만 중국 전역을 한꺼번에 개방했다가는 공산주의 체제 자체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제한적·점진적인 방식을 택했어요. 덩샤오핑은 선진 외국기업의 자본·기술·경영기법을 도입하기 위해 79∼80년 중국 남동부의 선전(深)과 주하이(珠海)·산터우(汕頭)·샤먼(廈門)등 4개 지역에 경제특구를 설치했습니다.

이들 지역은 특히 홍콩·마카오·대만과 동남아의 화교 자본을 끌어들이기에 가장 유리했어요. 덩샤오핑은 경제특구를 하나의 점(點)으로 삼아 이것이 성공하면 '동부 해안지대'라는 선(線)으로 확장하고, 선(線)이 성공하면 다시 '중국 내륙'이란 면(面)으로 개혁·개방을 확대한다는 전략이었지요.

2.홍콩은 경제특구가 아니라 특별행정구라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덩샤오핑은 80년대 초 영국과의 홍콩 반환 협상 당시 '1국가 2체제'라는 개념을 도입해 과거 서구 열강이 중국에 설치한 조계(租界)처럼 홍콩 특구의 독립적인 지위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래야 홍콩에 있는 외국기업이나 자본, 우수인력이 빠져나가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겁니다.

중국은 향후 50년간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지 않고 홍콩인들 스스로 홍콩을 다스리게 한다는 원칙에 따라 '홍콩 특별행정구 기본법'을 만들었어요. 한마디로 홍콩은 중국 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경제특구에 비해 정치·경제적으로 격(格)이 훨씬 높습니다. 홍콩 특구의 행정장관(최고책임자)은 비록 간접선거지만 홍콩인들이 뽑고 있어요.

지난 6월 연임에 성공한 둥젠화(董建華)행정장관은 주요 각료를 중앙정부에 추천하고, 각급 법원의 법관을 임명하는 등 사실상 독립국가의 총리와 맞먹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외교·국방 분야를 제외하곤 최대한 홍콩에 대한 간섭을 자제하고 있다지만 파룬궁(法輪功)·대만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홍콩은 베이징(北京)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형편입니다.

3.경제특구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하던데요.

맞아요. 중국은 개혁·개방의 단계에 개발 목표와 특구 명칭, 외국기업에 대한 특혜수준 등을 차별화했습니다. 1단계로 만든 4개 특구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자 2단계로 84년 동부 해안 도시인 다롄(大連)·톈진(天津)·칭다오(靑島)·상하이(上海)·광저우(廣州)등 14개 도시에 경제기술개발구를 설치했어요.

경제특구는 해외기업을 유치해 수출지향적 산업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혜택도 가장 많았어요. 수출 가공산업은 물론이고 상업·금융·관광 분야까지 개방을 확대해 외국기업들을 끌어들였어요. 반면 경제기술개발구는 제조업 중심의 수출 가공산업구의 성격이 강해요.

중국 정부는 2000년까지 32개 도시를 경제기술개발구로 선정해 사실상 경제특구에 준하는 세제 혜택을 줬습니다. 이와 별도로 각 지방 정부가 지정한 것이 경제개발구예요. 한때 이것이 2천여개에 이르러 중복·과잉투자와 부동산 투기 등의 후유증을 낳기도 했어요.

3단계에선 대상 지역을 더 넓혀 85년 창장(長江·양쯔강)과 주장(珠江)·민난(南)등 3개 삼각주 지역을 경제개방구로 지정했어요. 최근 동아시아의 새로운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는 상하이 푸둥(浦東)지구는 90년 종합개발계획에 따라 지정된 특수한 형태의 경제개방구랍니다.

4.경제특구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에 무슨 혜택을 주었나요.

각종 세금 감면과 토지 사용권, 도로·전력·수도와 같은 인프라 제공, 원자재에 대한 관세 면제 등 다방면에 걸쳐 특혜를 주었습니다. 예컨대 기업 소득세(법인세)만 해도 처음 2년간 면제하고, 다음 3년간은 절반만 내도록 했어요.

사회주의 국가에서 매매가 엄격하게 금지되는 토지사용권에 대해서도 전매(轉賣)를 허용했습니다. 또 기업활동에 필요한 기계설비 등을 들여올 땐 수입관세를 면제해줬어요. 지방정부가 지정한 개발구에 대해서는 내수판매를 최고 70%까지 허용한 사례도 있습니다.

중국은 외자 유치가 대성공을 거두자 국영기업들에 대한 '역차별'을 바로잡는다는 명분 아래 93년부터 이런 특혜들을 축소해 나가고 있답니다.

5.중국은 경제특구를 통해 어떤 성과를 거뒀나요.

경제특구의 대표격인 선전시(市)는 지금까지 2백20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선전은 인구 3만명의 벽촌에서 7백만명의 공업도시로 환골탈태했고, 1인당 소득(GDP)은 5천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중국의 지난해 1인당 소득이 9백달러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발전이 빠른지 알 수 있어요.

상하이 푸둥지구도 99년 말까지 2백77억달러의 외국자본과 전세계 5백대 기업 중 98개를 유치하는 눈부신 성과를 올렸습니다.

수출로 보면 선전·주하이·샤먼·산터우와 88년 경제특구가 된 하이난(海南)성 등 5개 특구가 중국 전체 수출의 13%(2백13억달러·99년 기준)를 차지했어요. 경제특구는 대외적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줬고, 국내적으론 다른 지역의 경쟁심리를 유발해 개발 모델을 전파하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6.경제특구로 인한 부작용은 없나요.

경제적으론 큰 성과를 거뒀지만 사실 부작용도 적지 않아요. 특히 동·서 간의 지역격차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전문가들은 동부지역의 1인당 평균소득이 98년의 경우 1만1천5백33위안(元·약 1백67만원)인 반면 서부는 3분의 1 정도인 4천1백59위안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살기 힘든 고향을 떠나 객지를 유랑하는 농민이 1억명을 넘어서 정치·사회적 불안요인으로 떠오르고 있어요. 지역·산업·계층간 불균형은 앞으로 중국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yas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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