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경제 어디로 …' 국내외 학자 초청 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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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외환 위기 이후 한국 경제와 동북아 경제의 향방에 관해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정덕구(鄭德龜)서울대 국제금융연구센터 소장의 사회로 열린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대 교수와 린이푸(林毅夫)베이징대 중국경제연구원장 간의 특별좌담에서 그 해답을 들어봤다.

▶정덕구=한국은 외환 위기를 잘 극복했지만 여기서 방심하면 새로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의 부동산 거품에 대한 우려가 크다.

▶아이켄그린=1990년대 초반의 일본과 현재의 한국은 닮은 점이 많다. 우선 한국은행은 시중에 떠도는 돈을 흡수해 더 이상의 거품을 막고,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 시중에 돈을 풀어 충격을 줄여야 한다. 금융감독원도 은행의 대출금이 건설·부동산 부문으로 지나치게 몰리지 않도록 적절한 규제를 해야 한다.

▶린이푸=거품은 경제가 성장하면 불가피하게 생기는 현상이다. 일단 은행들이 부동산 투기자금을 대주지 말아야 한다. 또 시중에 떠도는 돈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가도록 더욱 강도높은 기업의 구조조정이 요구된다.

▶정=한국은 외환 위기 이후 경제의 역동성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위기극복 과정에서 위험 관리가 강조되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이 많이 위축됐다.

▶아이켄그린=경제의 역동성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일본은 사실 마음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좋아질 수 있지만 정치 시스템이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기회가 있다.

▶린이푸=기업가 정신이 없는 곳에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다. 부동산 거품이 문제가 되는 것도 기업가 정신을 해치기 때문이다. 투기가 투자보다 수익이 높고 위험성이 적으면 사람들은 그곳으로 간다. 이것을 막아야 한다.

▶정=최근 동북아 경제 질서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북한이다. 신의주 경제특구 개발 계획은 그 과감성이 놀라울 정도다.

▶린이푸=북한은 중국식의 점진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가고 있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중국 경제를 현장에서 배우고 간 영향이 큰 것 같다. 신의주 특구의 성공을 위해선 남한을 비롯해 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ADB)등 국제기구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아이켄그린=신의주 특구의 성공 여부는 아직 두고봐야 한다. 북한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홍콩은 거대한 중국 시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반면 신의주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대다수 외국 기업들은 당분간 지켜보자는 입장일 것이다.

▶정=중국 경제는 최근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은행의 부실 채권이나 빈부 격차·실업 등의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린이푸=중국 경제는 내수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세계 경제 부진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다. 연간 7∼8%의 고속성장은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다. 중국 내부적으로의 핵심 문제는 국유 기업의 개혁이다. 국유 기업을 제대로 정리하면 다른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된다. 위안화 환율은 앞으로 변동폭이 커지겠지만 자유변동환율제의 도입은 현재로선 생각하기 어렵다.

▶아이켄그린=중국은 저임금의 고급 인력이 많고 기업가 정신이 충만하다는 게 성장의 활력소다. 또 인구의 이동이 활발해 빈부 격차·실업에서 생기는 갈등을 완화시켜주고 있다. 은행 부실 채권도 높은 경제성장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는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단순 기술을 사용하는 제조업은 중국에 넘겨주고 첨단기술이나 지식산업에 주력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일본 경제가 언제쯤 불황의 늪을 완전히 탈출할지 모르겠다. 정부의 개혁조치도 미흡한 실정이다. 일본의 장기 불황은 동북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데.

▶아이켄그린=일본은 금융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개혁하는 동시에 디플레를 막기 위해 시중에 돈을 대량으로 풀어야 한다. 경제 전문가나 대중은 이런 조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작 칼자루를 쥔 정치인들이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일본 은행이 시중에 돈을 풀면 엔화는 약세를 보이고 한국의 수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살아나면 장기적으로는 호재가 된다.

▶린이푸=일본은 은행들의 부실 채권도 문제지만 실물경제가 더 큰 문제다. 특히 기업들의 설비 과잉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거품이 꺼지면서 소비가 크게 줄어 내수 기업들은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조만간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정=최근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아이켄그린=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일찍 마무리될 경우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유가는 떨어지고 투자 심리가 살아나 세계경제는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오래 가고 미군이 고전하면 내년 세계 경제는 어려워질 것이다. 다만 미국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린이푸=미국 경제에 대해선 비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미국이 지난 10년간 호황을 누린 만큼 불황의 기간도 5년 이상일 것으로 본다. 이라크 전쟁은 비록 단기간에 끝나더라도 경제에는 좋을 리 없다. 특히 정부의 군사비 지출이 늘어나 재정적자가 커지면 미래의 성장에 장애물이 될 것이다.

정리=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참석자>

아이켄그린 버클리대 경제학과 교수

린이푸 베이징대 중국경제연구원장

정덕구 서울대 국제금융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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