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양동마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주역 2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하회마을 지키기 30년
류성룡 14대 종손 류영하옹

“세상 살면서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이제 그 중 하나를 해냈소.”

1일 오후 3시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 충효당을 찾았을 때 서애 류성룡(柳成龍·1542∼1607) 선생의 14대 종손 류영하(84·사진) 옹은 이렇게 말했다. 하회마을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서애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 이순신 장군 등 인물을 등용해 전란을 수습한 명신이다.

류 옹은 “30년 전쯤 내 손으로 하회마을보존회를 처음 만들고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보존 가치를 설명한 게 시작이었다”고 유치과정을 회고했다. 당시 새마을 사업으로 하회마을의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려 할 때는 제지에 나섰다. 하회마을 입장료를 받기 시작한 것도 그때다. 보존회는 10년 정도 지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문화재청에 제안했다. 당시는 등재 경쟁이 지금처럼 치열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분별한 민박집과 음식점이 문제가 돼 문화재청은 이 마을을 후보군에서 제외했다.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마을을 다녀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관광객이 몰리고 정비가 촉진됐다.

류 옹은 “2003년부터 안동시와 함께 원형복원사업을 벌이는 등 10년 넘게 등재를 준비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지난해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을 했던 김휘동 전 안동시장과 이상해 국제기념물유적협회(ICOMOS) 한국위원장의 노고를 강조했다.

지난해 9월 유네스코 실사단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 류 옹은 캐나다인 린니 위원에게 충효당 방 한 칸을 숙소로 내주고 한국식 아침을 대접하는 등 정성을 쏟았다. 그는 “하회마을은 배출한 인물이며 자연경관, 하회탈춤 등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 옹은 서울에서 중앙고보와 성균관대 대학원을 마치고 동덕여고에서 생물 교사를 지냈다. 71년 13대 종손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종택인 충효당으로 내려와 지금껏 하회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는 이날 오전 폭염 속에서도 권영세 안동시장 등과 함께 마을 입구에서 방문객 1000명에게 하회탈 목걸이를 걸어 주며 1시간 동안 환영행사에 나섰다.

안동=송의호 기자
사진=공정식 프리랜서



양동마을 알리기 15년
이언적 17대 종손 이지락씨

“기쁘면서도 어깨가 무겁습니다.”

조선 중기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의 17대 종손인 이지락(42·사진) 씨의 말이다. 그는 이언적 선생이 태어난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털어놨다.

이 마을 출신인 이씨는 대학 4년을 제외하곤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15년 전 부친이 작고한 뒤 종손으로서 여강 이씨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있다. 연중 10차례의 제사·차례를 지낸다.

문중 어른과 국내외 학자, 관광객을 맞아 마을을 내력을 알려주는 게 그의 주요 업무다. 경북대에서 한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대학에 출강하며 한국국학진흥원의 객원 연구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이씨는 양동마을의 존재 가치와 보존 의지를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그는 “(문화유산 등재는) 회재 선생의 존재와 학문적 힘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덕성’‘사람과 자연의 소통’‘절제’ 등 우리 문중의 정신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속마을은 세계 어디에도 있는 만큼 마을 자체가 아니라 다른 ‘무엇’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주=홍권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