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도피행렬 합류한 연예인과 그 매니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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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특별한 처지 때문에 추석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가는데도 낯선 이국땅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달을 보며 고향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다.

미국의 이수만씨, 중국의 서세원씨, 그리고 미국 LA의 몇몇 매니저가 그들이다. 미국에 도피 중인 사람들은 가끔 한인식당에서 서로 마주치면 "여기 여의도 아냐?"라며 씁쓸하게 웃는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이들에 대한 관심은 적지 않다. 일부 언론에선 몇주 전 이수만씨와 서세원씨가 한국으로 올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화나 인터넷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지인(知人)들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상당 기간 한국에 돌아올 맘이 없다고 한다. 특히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지닌 것으로 유명한 이수만씨는 '내가 교만해서 주님이 벌 주시나보다'라며 소홀했던 신앙생활에 열중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서세원씨는 아예 거처를 자녀들이 유학하고 있는 미국으로 옮겨 장기간 머물 것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미국, 특히 동포들이 많이 사는 LA가 도피·은신·망명용 피안(彼岸)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1992년부터 최근까지 해외도피사범은 모두 7백1명으로 집계됐는데, 그 가운데 절반 가까운 3백6명(43.7%)이 미국행을 택했다.

왜 미국일까. 첫째, 워낙 넓어 은닉하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계 깨먹고 도망간 계주가 미국에서 잡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둘째,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의 경우처럼 신분이 드러나더라도 송환 절차가 까다로워 국내로 잡혀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 연예인이나 매니저들을 송환하기 위해 국가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 워낙 한국 사람이 많아 생활에 불편함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건 미국에 다 있다. 딱 두 가지 빼고. '보신탕과 연탄'. 그동안 문제가 생긴 후 미국으로 도피했던 연예인들은 많다. 간통 사건으로 도망친 가수도 있고, 재벌회장과의 스캔들로 소리 소문 없이 건너간 영화배우도 있고, 이혼 후에 조용히 숨어 사는 탤런트도 있다. 그래서 종종 미국에서 건전하게 사는 연예인 출신들이 뜻하지 않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미국에서도 많이 읽히는 중앙일보 지면을 빌려 여러분께 인사를 하고 싶다. '겨울아이'의 가수였다가 목사로 변신한 이종용씨, 카페를 운영하는 '미련'의 가수 장현씨, 라디오 코리아 이장희 사장님, 과거의 명(名)DJ 최동욱과 나영욱씨,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의 염복순씨, 식당을 운영하는 홍세미씨.

미국에서 도피 중인 연예인·매니저들은 LA의 달을 보며 이런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달님, 제발 수사 좀 빨리 끝나게 해주세요. 그래서 예전처럼 정(?)을 주고받아도 아무 탈없게 해 주세요."

반면 미국 LA 동포들은 이런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 "달님, 달님, 제발 좀 막아 주세요. 미국은 도피처가 아니랍니다."

방송작가 ksitco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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