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性·영화정책 확실합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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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월요일 중앙일보를 보다가 나는 이게 웬 일인가 싶은 감회에 젖었다. 귀엽게 희화화된 캐리커처로 등장한 네 명의 대선 후보들. 칸을 쳐 이들의 정책을 한눈에 비교·분석하게끔 유도하는 기사 때문이었다. 경제·정치 분야에선 차별화된 정책을 내건 후보들이 유독 사회·문화 분야의 스크린 쿼터제와 여성 할당제(여성 쿼터제)에선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지지 의사를 밝혔다.

약간 튄다면 스크린 쿼터제에서 권영길 후보가 강화를 내걸었다. 여성 쿼터제에선 대표적인 두 정당의 후보가 필요하다고 한 반면 정몽준 후보가 이례적으로 50%로의 확대안, 권영길 후보가 30∼50% 확대안을 내건 것이 눈에 뜨인다. 아무튼 이들이 대선 후보가 된 배경과 비전이 다른 만큼 당연히 서로 차별화된 정책을 내걸어야 마땅한데도 두 가지 쿼터를 모두 잘 지키거나 더 강화하겠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변화무쌍한 이 사회에서 정신을 차리고 살려고 하다보니 나는 이 두 개의 쿼터제도를 지지하는 단체나 흐름에 몸을 담게 됐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당연히 이 네 후보 모두를 지지해야 하는 기이한 딜레마도 느낀다. 왜냐하면 정책에 따르면 네 후보 모두 여성 공직자의 활발한 진출은 물론 호주제 철폐도 눈치 안보고 이뤄낼 것 같다. 또 시장경제 만능의 최면에서 깨어나 스크린 쿼터제를 상징으로 하는 문화상품의 세계무역기구(WTO)체제하의 장사논리에 맞설 것이란 기대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고작 한 표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하기로 했다. 배경과 본질 무늬가 다른 이들이 유독 이 두 쿼터제도를 지키려는 것은 왜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자 말자 혹시 그건 일단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한 제스처가 아닌가 하는 불온한 생각도 든다.

신랄한 표현으로 구설에 오르곤 했던 노무현 후보는 왜 여성정책에 관해서는 화끈한 발언도 안 하는 걸까? 실제로 그간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성과를 거둔 여성정책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 정도로는 21세기 진보정치에 끼기 힘들다는 생각은 안하는 것일까 하는 답답함이 든다.

다수당이기에 야심찬 야당이어도 좋을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좀 더 독자적인 여성정책을 내걸 생각은 왜 못하나? 민주당이 해놓은 것을 비판하면서도 그나마 잘한 여성정책에는 그저 무임승차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든다. 게다가 스크린 쿼터제의 본질은 신자유주의 논리에 저항하는 문화 논리인데, 이걸 미국에 대항해 지켜낼 각오가 돼 있는지, 경제정책과 비교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당보다는 재벌가의 아들, 월드컵이란 배경과 떼어놓고 보기 힘든 정몽준 후보는 여성쿼터 50%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렇다면 그는 그런 양성평등 정신을 현대기업이나 월드컵 행사에서 보여준 일이 있는가? 이를테면 참모진부터, 그의 가족이 관장하는 기업에서부터 50% 여성인력을 배치하는 결단을 내릴 진심을 담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재벌 규제 완화라는 경제정책과 신자유주의 노선을 보여주면서 어떤 논리로 스크린 쿼터제를 지키겠다는 것인지 퍼즐이 잘 안맞는다.

두 쿼터제를 현재보다 강화하겠다는 권영길 후보는 앞뒤가 맞는 편이다. 그런데 여성 쿼터제를 30∼50%라고 한 점이 모호하다. 이런 안은 스스로 현실의 벽 앞에서 주춤하는 자신없음을 보여준다. 장렬하게 깨지더라도 이상은 제대로 내세우는 정신은 어디로 갔나?

한 표를 가진 나는 다시 고민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갖기로 했다. 여성 쿼터제나 스크린 쿼터제를 옹호한 정당성이 대선 후보 이전에 국민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뿌듯함 때문이다. 문화는 문화산업론으로만 풀리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서 시작되며, 여성 살리기가 사회 살리기임을 모두 인식한다는 점은 이 사회에 희망이 있다는 신호다. 단 이들의 정책이 선심용이 아니라 진심이란 전제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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