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여억원 추가대출은 또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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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2000년 6월 4천9백억원을 대출받은 데 이어 지난해에도 5천여억원을 추가 대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상선이 산은에서 빌린 돈은 1999년 말 잔액 기준 4백25억원에 불과했으나 2000년 말 약 4천억원으로 불어났으며 2001년 말에는 무려 9천58억원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특정 기업에 대한 대출이 1년 사이 배 이상으로 불어난 것은 금융 관행상 극히 이례적이다. 더구나 산은이 외환은행을 제치고 사실상 현대상선에 대한 주채권은행 역할까지 맡아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혜 의혹은 더욱 떨쳐내기 어렵다.

'대북 사업과는 관계없는 순수한 유동성 지원'이라지만 현대상선이 현대그룹 대북 사업 창구인 현대아산의 대주주였다는 점에서 대북 사업 유지를 위한 당국의 '현대 살리기'식 특혜 지원의 인상은 짙어진다. 경영이 어려웠던 현대상선이 거액을 대출받아 현대아산 증자에 참여한 것도 이상하지만 산은이 어떻게 5천여억원을 추가 대출해 줄 수 있었는지 선뜻 이해가 안간다. 이 추가 대출 과정과 이 돈의 용처도 아울러 밝혀져야 한다. 국책은행인 산은의 경영 부실 요인을 밝히는 차원에서도 철저한 추적과 감사가 뒤따라야 한다.

게다가 문제의 당좌대월 4천억원이 세장의 수표로 인출된 뒤 다시 64장의 자기앞수표로 잘게 쪼개졌다는 사실, 또 그해 8월 현대그룹 관련 비공개 장관회의가 청와대에서 10여차례 열렸다는 것도 확인됐다. 현대상선이 상반기 보고서에서 대출금 중 3천억원을 누락시킨 사실 등을 종합하면 대출금이 돈 세탁 과정을 거쳐 다른 용도로 쓰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돈이 현대 내부에서 오간 것이라면 그것대로 계열사 편법 지원 여부를 밝혀내면 된다. 불공정 거래 조사 목적이 아니면 금융실명제법상 계좌추적이 어렵다는 것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계좌추적에 장애는 법이 아니라 입을 다물고 있는 당국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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